[이 남자의 경쟁력]<18>MS사회공헌 담당 이사 권찬의 ‘펀’(f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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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월 11일 0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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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사회공헌 담당 권찬(45)이사. 사진=동아일보 나성엽 기자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사회공헌 담당 권찬(45)이사. 사진=동아일보 나성엽 기자
'20년쯤 일한 뒤에는 내가 모은 돈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싶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사회공헌 담당 권찬(45)이사가 1987년 광고대행사인 코래드에 입사할 때 입사지원서에 썼던 문구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실을 쫓아 전공과 다른 분야의 직장을 잡으면서도 '사회봉사'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않았다.
대학시절, 사회봉사 현장 실습 과정에서 만난 한 죄수의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죄수와 마음 터놓고 얘기하며 앞으로의 사회적응을 도우라는 역할을 받았지만 권 이사는 그가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하는 말에 "예, 예…" 허둥지둥 대답만 하며 2주일을 보냈다.
그때 그는 봉사가 마음만 앞선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고, 봉사 자체가 즐겁지 않으면 받는 사람도 불편하다는 사실을.

●죄수에게 얻은 교훈
권 이사는 코래드, 삼성에버랜드 등을 거쳐 1998년 한국 MS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줄곧 광고, 홍보, 이벤트, 기업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해 왔다. 그런 그에게 2006년 11월 기회가 왔다.
회사 측이 사회공헌을 맡을 전문가 채용에 나섰지만 좀처럼 적합한 인물이 나서지 않자 권 이사가 "기업과 사회사업을 모두 잘 아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자원하고 나선 것.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일해오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회봉사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 온 것이 회사의 결정을 쉽게 했다.
2005년 산제이 머천다니 MS 아시아 담당 대표가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머천다니 대표는 "한국에서 MS가 사회공헌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 하느냐"고 물었고, 당시 홍보팀장이었던 권 이사는 "돈으로 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고 답했다.
권 이사가 "직원들이 회사의 강요나 동원에 의해 억지로 봉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봉사할 수 있도록 '봉사휴가'를 도입해 달라"고 말하자 "며칠이면 되겠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속으론 1주일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많이 달라고 하면 아예 하루도 안 줄 것 같았죠. 당시 한 다국적 기업이 한국 지사 직원들에게 2일씩 봉사휴가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회사 보단 더 하자는 생각으로 '3일을 달라'고 했지요."
그 자리에서 임원회의가 열렸고, "한국 MS 직원들에게 3일씩 봉사휴가를 주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 MS 사회공헌 담당 이사 권찬 인터뷰

●'펀'(fun)하게 하자
사회 공헌 업무를 맡은 뒤 그는 부임 전 두 곳이었던 지원 복지시설을 6곳으로 늘렸다. 권이사가 먼저 나선 일이 아니었다. '3일간 봉사휴가'로 직원들 사이에서 사회봉사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고 직원들은 평소 자신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시설들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도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올렸다. 권 이사는 직접 현장을 찾아 지원 여부를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10여 년 전부터 MS가 지원해온 서울 영등포 '브니엘의 집'과 '암사재활원'외에 다문화 가정을 돌보는 '코시안의 집', 노인 요양소인 '해뜨는 마을', 행려병자를 돌보는 '요셉의원', 아동 청소년들이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만남의 집' 등이 추가로 지원을 받게 됐다.
권 이사는 "사실 MS가 이들 시설에 지원하는 액수는 크지 않다"고 털어놨다.
MS는 미국 본사 뿐 아니라 각국 지사에서 기빙 매치(Giving Match)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일정액을 기부하면, 그와 똑 같은 액수를 회사 비용으로도 지원하는 것.
권 이사는 "이렇게 해서 각 시설에 지원되는 액수는 백만 단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예측 가능한 지원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매달 일정액이 MS직원과 회사로부터 지원된다는 '예측 가능성' 때문에 각 시설들은 예산을 세울 수 있고 필요에 따라 각종 물품이나 장비 구매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
권이사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펀'(fun) 이다.
"연말에 어느 기업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봉사를 하러 온 직원들이 사실은 봉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동원돼' 왔다면 상대방이 기분 좋을 리 없다"는 것.
최근 경기 시흥의 거모종합사회복지관에 직원들과 함께 김장을 하러 갔을 때였다.
권이사는 복지관 관계자들에게 "예산도 넉넉지 않을 텐데, 컴퓨터는 잘 쓰고 있느냐. 혹시 관리가 필요하면 지금 우리가 하겠다"고 제안했다.
복지관 측은 "그러지 않아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도움 받는 입장에서 먼저 뭐 해 달라고 요구하기 힘들어서 말을 못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권이사는 직원들에게 "우리 쉬운 일 좀 해 보자"고 운을 띄웠다.
"무슨 일인데요?"
"여기 컴퓨터 손보는 일."
그러자 직원들은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컴퓨터랑 씨름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또 컴퓨터 앞에 앉아야겠느냐"며 "쌀 나르고 김치 담그는 게 더 좋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어지는 권이사의 말에 직원들은 "와, 그거 재밌겠는데요"라며 그 자리에서 'PC점검단'을 구성했다.
"컴퓨터 분해해서 먼지 제거하고, 바이러스 고치고 이런 일 하자는 거야, 일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컴퓨터와 관계된 복잡한 이론, 부호와 씨름하는 게 직업인 그들에게 컴퓨터를 분해해 청소하고 바이러스를 잡는 일은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아무런 고민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권 이사는 "재미있는, 펀(fun)한 봉사가 되려면 결국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봉사와 연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제약회사는 약품을 제공하고, 컴퓨터회사는 컴퓨터 기술을 제공하고,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은 실력을 발휘해 김장을 해 주시는 것이 수준 높은 봉사라고 봅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사회공헌 담당 권찬(45)이사. 사진= 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나성엽 기자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사회공헌 담당 권찬(45)이사. 사진= 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나성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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