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경쟁력]⑬ 앙드레김의 ‘기억력’

  • 입력 2008년 12월 6일 13시 26분


앙드레 김. 동아일보 자료사진
앙드레 김. 동아일보 자료사진
"어떤 상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아~ 상은 다 기억나요. 이번에 보관문화훈장 받았고, 13년 전 화관문화훈장 받았어요. 6년 전 프랑스 예술 문학훈장, 16년 전 이탈리아 문화공로 훈장, 그리고 15년 전에 샌프란스시코 시에서 앙드레 김의 날을 선포했어요."

메모를 보며 읽는 것도 아닌데 한참 전에 받은 상 이름과 연도까지 막힘없이 흘러나온다. 한국 패션디자인의 살아있는 신화인 앙드레 김(73).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비상한 기억력은 익히 알려져 있다. 앙드레 김이 그 오랜 세월 정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로 '나이에도 녹이 슬지 않는 기억력'을 꼽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도대체 어떻기에? 10월말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의상실에서 그를 만났다. 하얀 옷이 길게 늘어선 의상실을 걸어 들어가니 하얀 책상 앞에 그가 하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 사랑하면 기억한다

"스스로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요. 떠오르는 대로 말하다 보면, 상대방이 대화하는 중에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하시기는 해요."

기억력에 대해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방법은 모르지만 대신 비서가 입력해준 100여 명의 전화 단축 번호를 다 외우고 있다.

특별히 메모를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던지는 질문마다 숫자를 꼽아가며 대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일정을 조율했던 10월 한 달 동안 열린 자신의 패션쇼에 대해서도 "7일 인천 송도, 16일 서울, 19일 제주도, 24일 여수에서 4번이나 열렸다"고 일사천리로 들려주었다.

이란성 쌍둥이인 손주들의 나이에 대해서도 그냥 "4살"이 아니라 "3년 8개월"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식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외우는지 비결을 들려달라고 묻자 그는 "상대를 좋아하면 오래 기억이 나요"하고 대답했다.

"사람 얼굴이나 이름을 잘 외우는 편은 아니에요. 다만 한 번만 보아도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분은 개성이 있어요. 교양미, 지성미를 갖춘 품격 있는 분이요. 몇 번 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는 분들한테는 죄송해요."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42년 전 워싱턴에 갔다 우연히 보게 된 존스 홉킨스 대학 부설 피바디 뮤직 인스티튜트 시즌 오프닝 콘서트 출연했던 정경화 씨"처럼. 그 후로 클래식한 품격을 갖춘 정경화씨 공연은 꼭 가서 본다.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한국 패션디자인의 살아있는 역사

앙드레 김의 인생은 곧 한국 디자인의 역사다. 1962년 첫 패션쇼 이후 200여회 패션쇼를 열었고 1966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에서 해외패션쇼를 갖기도 했다. 1996년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세계 최초로 패션쇼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46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디자인을 했지만 매번 계절에 따라 테마에 따라 다르게 구상해요. 전에 했던 디자인과 절대 중복되는 일이 없어요. 일일이 펼쳐 보지는 않지만 차곡차곡 머리 속에 쌓여 있어요. 어떤 디자이너라도 그건 상식 아닌가요?"

1963년 최윤희 씨가 영화배우로는 처음 그의 패션쇼에 출연했다. 1963년 11월 반도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패션쇼였다. 당시만 해도 가장 첨단을 달리는 "판타스틱(fantastic)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모델, 영화배우, 미스코리아,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매번 그의 패션쇼에 출연한다. 장미희, 이영애, 김희선, 한 채영, 최지우, 송혜교, 장동건, 배용준, 이병헌, 원빈, 송승헌, 권상우, 이준기, 이다해, 장근석… 배우들의 이름을 그가 또 한 번 줄줄이 나열했다.

"아~ 항상 자랑스러워요. 제가 추구하는 세계는 상업적인 패션쇼가 아니라 종합 예술이에요. 감성적인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직업 모델보다는 표현력이 뛰어난 연기자 분들이 무대에 서 줘야 해요."

● 단어 외우기가 영어 실력의 기본

각국 외교관들과 대화하고 세계를 누비며 패션쇼를 여는 그의 영어실력은 녹록치 않다. 적확한 어휘를 기본으로 영국식 발음을 고수하는 그의 영어 실력도 '기억력'을 바탕으로 한다.

"저는 1935년 경기도 고양시 신도면 구파발리(현 서울 은평구 구파발동)에서 태어났어요. 유치원 없었고요, 영어학원도 없었어요. 1948년 고양 중학교 1학년 때 시골 학교에서 놀랍게도 영어를 일주일에 5시간이나 가르쳤어요. 버스가 드문드문 다녀 십리씩 걸어 다니던 학교에서요. 영어수업이 재미있어서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는 지금도 길을 지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는 간판을 보면 사전을 찾아보고 스펠링까지 완벽하게 외운다. '더블 s' '더블t' 인지 철자를 달달 외우고 정확히 뜻을 파악해 둔다.

"학교 졸업한 후에도 모르는 단어는 사전 찾아가면서 외워요. 지나가다 영어 간판 보면 스펠링 완전히 외우고, 어릴 때부터 정확히 배워야 해요. 외국인 만나도 모르는 단어 들으면 '지금 발음한 단어 스펠링이 뭐예요?' 물어보고 정확히 외워둬요. 오~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공부가 끝이 있나요?"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는 그는 '투웨니'(Twenty)가 아니라 '투웬티', '뷰리풀'(Beautiful)이 아니라 '뷰팃풀', '머치 베러'(Much better) 대신 '머치 베터'라고 발음한다. 각국 외교관들과 대화할 때도 꼭 영국식 발음을 고수한다.

"영어를 처음 배우던 중학교 시절 영국식 악센트로 교육받아서 아직도 영국식 영어가 매혹적이에요. 미국의 인권을 존중하는 정치, 문화 좋아하지만 영어는 본고장이 아름다워요. 사실 미국식 영어 하는 거 자존심 상해요."

● 내 세계의 근원은 어린 시절 환상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은 그의 예술적 감수성의 원천이다. 그가 유난히 흰색을 좋아하는 것도 어린 시절 마을에 내리던 하얀 눈에 반해서였다.

"어려운 환경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저는 동화적인 꿈이 많았어요. 그림 좋아하고 시 좋아하고 노래도 많이 했어요. 그림, 작문, 연극 학예회 때 많은 활동했고 합창, 독창을 제일 좋아했어요. 당시만 해도 패션이란 단어, 디자인이란 단어 전혀 생소한 단어였지요. 문화적인 혜택은 없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현실은 전쟁의 상흔과 가난으로 황폐했지만 머릿속엔 환상적인 꿈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이 상상했던 환상을 50여 년 전 본 영화의 줄거리에 비유해 설명했다.

"산속에 쭉쭉 솟은 나무사이로 뻗은 길에 양옥집에 다람쥐들, 새들이 다니는 꿈을 많이 꿨어요. 1950년대 후반 '나의 청춘 마리안느' 라는 영화 아세요? 한 소년이 나지막한 산을 뛰어 놀던 중에 신비한 성이 나타나고 거기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어요. 주인공인 사춘기 소년이 그 여인에 매혹당해 숨어서 바라본다는 내용이에요. 그 여인이 롤스로이드를 타고 마을 축제에 오고 둘은 숲으로 도망가요. 제가 머리 속으로 상상하던 장면이 영화화 된 것처럼 느꼈어요."

그가 처음 패션쇼를 열었던 1962년.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기였지만 음악과 예술, 문화에 대한 열정은 굉장했다. 교육열도 높았다. 명동에 가면 클래식 다방이 늘어서 있었고 음악을 듣기 위해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의 다방하고는 달라요. 극장식 구조를 갖추고 차이코프스키, 모차르트, 쇼팽 음악이 늘 흘러 나왔어요.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샤갈, 피카소 등 화가들의 세계에 대한 한국 대학생들의 조예가 깊었어요. 문화적 수준이 아주 높았고요. 지금 대중음악처럼 클래식이 붐이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 열정이 지금 한국의 뿌리가 된 거에요. 오늘 날 자동차, 배 산업이 세계 1,2위를 다투게 되었잖아요."

● "저 연휴 싫고요"

그는 패션쇼가 열리면 메인 모델부터 초대 손님까지 일일이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고 한다. 현재 '앙드레 김' 브랜드는 골프웨어, 아동복, 이너웨어, 코스메틱, 아이웨어, 주얼리, 홈패션, 도자기, 가전제품을 망라한다. 이런 라이센스 제품 디자인도 3~4달에 한 번씩 직접 검토한다.

"워커홀릭이라고요? 아니요. 전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TV 5대로 늘 뉴스를 보고, 19가지 신문을 구독한다. 가끔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는 하지만 일 하는 게 곧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바쁠수록 활력이 넘친다.

"저 연휴 싫고요, 일요일 되면 몸이 더 언컴퍼터블(uncomfortable), 불편해요.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쉬어야 하니까 연휴 때 쉬긴 쉬지만 빨리 월요일이 왔으면 하고 기다려요. 패션 디자이너는 혼자 하는 일이 드물어요. 화가와 작가랑 달라요. 디자인 구성은 혼자해도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패턴, 슈잉, 피팅, 가봉까지 팀워크가 잘 이루어져야 완성도가 높아요. 평생 팀으로 일하다 보니 혼자 일하면 지루해요. 새 달력이 나와 연휴가 일요일하고 겹쳐지면 좋아요. 일요일 다음에 연휴가 이어지면 아~ 지루하게 느껴져요."

또, 사랑하는 가족들의 기념할 만한 순간을 모두 기억한다. 바쁜 일정 중에도 결혼 해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아들 중도와 손자들의 기념일은 반드시 챙긴다.

"아~내일은 셋째 손자 첫 생일이에요. 몇 달 전부터 예쁘고 아름다운 생일상을 차려 주려고 준비 많이 했어요. 잊을 수 없을 만큼 특별하게 꾸며 줄 거예요."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에게 여전히 삶은 열정의 대상이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그 여자의 경쟁력]<15>정연주 아나운서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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