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소결’ 현상 연구 공로로 인촌상 받은 강석중 KAIST 교수

  • 입력 2007년 9월 14일 03시 07분


코멘트
강석중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기초연구야말로 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파급력이 가장 강한 분야”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원
강석중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기초연구야말로 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파급력이 가장 강한 분야”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원
“산업 경쟁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는 너무 과장된 이야기예요. 그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재료 분야의 숙제를 연구했을 뿐인데….”

기초연구와 산업을 잘 조화시킨 공로로 인촌상(자연과학부문)을 받은 강석중(57)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그저 기초연구를 했을 뿐”이라며 자신이 낸 성과에 대해 겸손해했다.

본인은 “기초연구일 뿐”이라고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강 교수는 학술 연구와 산업을 잘 조화시키는 연구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각종 부품에 쓰이는 세라믹과 분말야금 소재의 핵심 제조공정인 ‘소결(燒結)’ 현상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소결이란 미세한 분말에 열을 가하면 입자의 크기가 커지며 굳는 현상. 예를 들면 흙을 반죽한 뒤 구워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미세한 흙가루가 열을 받아 점점 커지면서 분말 사이의 틈이 줄어들어 그릇이 단단해지는 것. 세라믹 외에도 수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수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분말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강 교수는 1980년대부터 연구에 매달려 분말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소결 현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었다. 2004년에는 그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소결(Sintering)’이라는 제목의 책을 영어로 펴냈다.

이 책은 미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나라의 대학원에서 교재와 참고서로 채택할 만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주요 학술지에 낸 논문 수만 200여 편. 국제소결학술대회에서도 그의 연구를 3회 연속 기조강연 주제로 선정할 정도로 세계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 들어 소결 현상을 산업에서 응용하는 분야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1mm도 채 안 되는 소형 전자부품, 충격흡수 장치, 베어링 같은 자동차 부품 제작에 이 현상이 폭넓게 활용된다. 예전 같으면 재료를 깎거나 주물에 넣어 부품을 만들었지만 전자기기나 기계가 점점 작고 정교해지면서 소결현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 이제는 열을 활용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정도로 파급효과가 크다.

강 교수는 “자동차의 경우 소결 현상을 이용해 만든 부품이 한국 차에는 8kg, 미국은 10kg, 자동차 선진국인 일본차에는 12kg 정도가 들어 있다”며 “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조절하느냐가 기술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기초연구를 수행하면서도 산업에 직접 응용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1993∼1994년 삼성전기 종합연구소 방문교수로 일하는 동안 휴대전화처럼 얇은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다층세라믹축전지의 공정을 개선해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국방과학연구소와 F-4 팬텀 전투기용 브레이크 디스크를 공동 개발해 국방력 강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또 풍산금속, 일진다이아몬드 등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대전차용 철갑탄, 초강력 절삭공구 등도 상당 부분 그의 연구 덕을 봤다.

강 교수는 “아무리 기초적이고 학술적인 성격을 띠는 연구도 얼마든지 훗날 산업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대학에서 하는 기초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평소 ‘조용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2006년 KAIST 교수협의회장을 맡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실험실을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높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인촌상 자연과학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한민구 서울대 교수조차 “25년 넘게 연구에만 매진하다 보니 같은 분야 연구자가 아니면 잘 모를 만큼 자기 홍보를 안 하는 과학자”라고 말할 정도. 제자들조차 그의 이번 수상 소식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후학 양성은 한 치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1980년 KAIST 교수가 된 뒤 지금까지 석박사 제자 50여 명을 길러내 산업계와 학계로 진출시켰다. 어쩌면 많지 않은 수지만 그에게는 나름의 독특한 교육관이 있다. 평소 제자들에게 ‘자기 동기부여’와 ‘재미’를 강조한다.

“어디서든 스스로 동기를 잘 부여하는 과학자가 연구를 잘한다고 생각해요. 결과도 좋고요. 제자들이 연구는 재미있고 보람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제자들과 연구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지요.”

강 교수의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학계와 산업계, 연구소에 넓게 포진해 이 분야 연구를 이끄는 파워그룹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옆에서 제 연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제자들 덕분에 상을 타게 됐다”며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제자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강석중 교수:

△1950년 경북 문경 출생 △1973년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197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 석사 △1980년 프랑스 파리 중앙대 공학박사 △1980년∼현재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1985년 프랑스 파리6대학 국가박사 △2004∼2005년 KAIST 나노과학기술연구소장 △2005년∼현재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정 나노계면연구센터 소장 △2006년 한국분말야금학회장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