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기자의 와인드업]이대호 ‘2루타 실종’ 미스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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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힘든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야구팬들은 ‘이대호(34·시애틀) 도루하는 소리’라고 말한다. 이대호가 국내 프로야구 11시즌 동안 도루를 9개만 기록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이대호에게 올 시즌 도루만큼이나 보기 어려운 기록이 하나 더 생겼다. 2루타다.

15일까지 메이저리그 43경기에 출전한 이대호는 114타석 동안 2루타를 단 한 개도 치지 못했다. 홈런을 10개나 쳐낸 장타력을 감안할 때 보기 힘든 기록인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이대호의 홈런 편식에 힘입어 시애틀은 올 시즌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유일하게 2루타(93개)보다 홈런(95개)이 많은 팀이 됐다.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인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1913년 이후 한 시즌이 끝난 뒤에도 2루타보다 홈런이 많았던 팀은 6개 팀에 불과하다.

이대호의 2루타 가뭄은 무엇보다도 느린 발 때문이다. 이대호는 2일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왼쪽 담장을 바로 맞히는 대형 안타를 치고도 2루까지 가지 못하고 1루로 되돌아가다 태그아웃 됐다.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비해 시즌 전 감량을 했지만 이대호의 몸무게는 여전히 113kg대다. 여기에 장타로 연결되기 쉬운 라인 선상으로 빠지는 안타가 이대호에게는 드문 탓도 있다.

시애틀의 안방구장 세이프코필드의 ‘파크팩터’를 보더라도 2루타가 나오기 쉽지 않은 환경인 것이 사실이다. 파크팩터는 한 구단의 안방경기, 방문경기 성적을 비교해 해당 구단 안방구장의 타자 친화도를 파악하는 숫자다. 통상 1이 넘어가면 타자 친화적, 1이 안 되면 투수 친화적으로 분류된다.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에 따르면 올 시즌 세이프코필드의 2루타 파크팩터는 0.862로 메이저리그 전체 30개 구장 가운데 10번째로 낮다. 반면 홈런 파크팩터는 1.164다. 이대호가 홈런을 기록한 구장들인 샌디에이고의 펫코파크(0.963), 신시내티의 그레이트 아메리칸볼파크(0.938) 등도 홈런 파크팩터보다 2루타 파크팩터가 낮은 구장들이다.

2013시즌을 앞두고 시애틀 구단은 세이프코필드의 왼쪽 중간 담장을 홈 쪽으로 10피트(약 3m) 이상 당겼다. 왼쪽 담장까지의 거리가 길고 담장 높이도 높아 오른손 타자가 홈런을 치기에 불리하다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른쪽 타자 이대호가 홈런을 치기에는 좋은 환경이 됐지만 2루타를 치기에는 불리해진 것이다. 이대호가 세이프코필드에서 기록한 홈런 6개 중 5개는 왼쪽 중간 담장을 넘어갔다.

그렇다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대호의 2루타를 보지 못할 것 같지는 않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치고도 2루타를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한 타자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애틀이 이번 주말 방문 3연전을 치르는 보스턴의 안방구장인 펜웨이파크의 2루타 파크팩터는 1.358로 30개 구장 중 네 번째로 높다. 더구나 이대호가 홈런을 주로 치는 왼쪽 방향에는 구장의 상징과도 같은 높이 11.3m의 녹색 외야 펜스인 일명 ‘그린몬스터’가 있어 홈런을 노리기가 쉽지 않다. 당장 이번 주말 이대호의 마수걸이 2루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시애틀#이대호#이대호 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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