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24>LPGA 한국골퍼 최고령 박세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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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37세… 은퇴? 내 목표는 아직 진행중”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어려 보인다”는 기자의 첫마디에 박세리(37)는 “요즘 그런 말을 들으면 아주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공치사는 아니었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태어나 처음 관리를 받았다는 피부는 뽀얗게 보였다. 지난주 박세리의 고향인 대전의 한 찻집에서 만났을 때였다. 박세리는 지난달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출전했다 어깨 통증이 심해져 치료를 위해 일시 귀국한 뒤 한 달 가까이 쉬고 있다. 재충전하는 동안 10월 3일부터 경기 여주 솔모로CC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을 개최하는 조인식도 가졌다.

“내 이름을 내건 대회를 연다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다. 내가 선수로도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나 만족할 만한 대회 운영이 됐으면 해서다.”

○ 한국 골프는 세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8년 박세리의 LPGA투어 진출을 계기로 한국 골프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박세리도 “스포츠라는 인식조차 없었던 골프에 대한 인지도가 커졌다. 후배들의 기량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고 자평했다. 박세리가 어린 시절 공동묘지에서 담력을 키웠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땄다는 육상 선수 임춘애 스토리만큼 널리 알려졌지만 그는 “그 얘기라면 지친다. 와전된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유성CC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다 집에 가려면 깜깜한 산속 길을 걸어야 했고, 무덤을 지나친 적이 있었을 뿐이다. 하체를 단련하려고 아파트 15층을 매일 5번 이상 오르락내리락했다. 변변한 헬스클럽도 없던 시절이었다.”

박세리의 활약 속에 체계적인 주니어 육성 프로그램이 도입됐고 국내 투어도 활성화됐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개선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스폰서, 골프장들도 그런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 국내 대회에선 공식 연습라운드 때도 골프장에 일반 손님을 받는다. 이런 현실부터 우선 바꾸고 싶다.”

○ 끝없이 추락한 뒤에야 세상을 제대로 배웠다

박세리는 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 중 최고령이지만 대회 때마다 우승을 노릴 만한 경쟁력을 갖췄다. “맏언니, 고참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대회 코스 안에서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다. 골프 선수 박세리로서 몰입할 따름이다.”

반면 국내 여자 골프 선수들은 대개 20세 전후에 꽃을 피운 뒤 25세가 넘어가면 환갑 취급을 받다 뒷전으로 물러나는 게 일반적이다. “어릴 때 너무 운동에만 매달린 탓이다. 의욕을 잃기 쉽고 부상 위험도 많다. 즐겁게 롱런하려면 무엇보다 선수 관리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박세리도 2005년 최악의 부진으로 골프를 관둘 위기를 맞았다. “슬럼프에 빠지면서 머릿속에 1개였던 물음표가 매일 하나씩 늘었다. 훈련만이 약이라고 여겨 오전 5시에 일어나 보기도 하고, 죽어라 공을 쳐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혼란스럽고 모든 게 너무 안돼 도망가고 싶었다. 당시 여동생이 그런 나를 보며 ‘저러다 언니 죽는 거 아니야’라고 걱정했다는 말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힘든 순간을 떠올리던 그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졌다. 잠시 숨을 고른 후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다 손목 부상이 찾아와 아예 쉬었던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골프장을 떠나 친구들과 차를 마시고 맥주도 한잔하면서 차츰 나를 돌아보게 됐다. 너무 한 가지만 바라보고 달려온 내 자신이 미련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활에 여유를 찾으면서 서서히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즈음 어떤 팬이 ‘웃으니까 좋다’는 말을 했다. 난 늘 웃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였다. 이젠 골프장에 가면 꽃도 보고 산도 본다.”

박세리는 “뭐든 오래하면 잘 알기 마련인데 골프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요즘 골프가 정말 좋아졌다”고 했다. 주말에 화창하다는 날씨 소식에 “연습 좀 제대로 할 수 있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 아버지 그리고 내 남자


박세리에게 아버지 박준철 씨는 영원한 스승이다. 요즘도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스윙을 교정한다고 한다. 세 자매 중 둘째인 박세리는 마흔 가까운 나이에 독립할 만도 한데 한국에 오면 부모와 함께 산다.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셨다. 미국에도 나를 혼자 보내셨다. 꿈을 이루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거였다. 나를 키운 8할 이상은 아버지이다.”

박세리뿐 아니라 김미현, 박지은 등 1세대 골퍼의 성공에는 ‘골프 대디’의 열성과 딸들의 순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빼놓기는 힘들다.

그에게 “이런 자리에서 곤란한 질문은 뭐일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대번 눈치를 챘다. “결혼 말하는 거냐. 곤란할 건 없는데 짝이 없어 참 난감하다. 6년 사귄 남자친구와 1년 반 전에 헤어진 뒤 소개팅 한 번 못했다. 나는 별로 불편하지 않은데 상대편은 박세리의 남자라는 게 참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데이트도 남을 의식해야 하고….”

그는 “은퇴는 아직 먼 얘기”라고 했다.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진행형이다. 9월 6일 출국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을 통해 복귀할 계획이다. 6세 조카가 너무 예쁘다며 ‘조카 바보’가 됐다는 박세리는 “아기를 참 좋아한다. 결혼하면 바로 은퇴해야 할 것 같다. 어디 좋은 사람 없느냐. 누구 좀 소개해 달라”고 했다. 푸근한 충청도 억양으로 넉살 좋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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