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joy]강진 해안도로 24km 트레킹

  • 입력 2008년 2월 22일 02시 55분


《‘외가가 있는 강진 미산 마을 사람들은/바다와 뻘을 바닥이라고 한다/바닥에서 태어난 그곳 여자들은/널을 타고 바닥에 나가/조개를 캐고 굴을 따고 낙지를 잡는다/살아 바닥에서 널 타고 보내다/죽어 널 타고 바닥에 눕는다//……//오랜만에 찾아간 외가 마을 바닥/뻘밭에 꼼지락거리는 것은 죄다/어머니 전기문의 활자들 아니겠는가/저 낮은 곳에서 온갖 것 다 받아들였으니/어찌 바닷물이 짜지 않을 수 있겠는가/봄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바닥에서 시작된다.’

<이대흠 ‘바닥’ 부분>》

○ 짭조름한 바다냄새에 가슴이 흔들흔들

영암은 아직 추웠다. 바람이 칼칼했다. 광주 나주를 거쳐 남으로 내려갔지만 봄은 어디에도 없었다. 영암에서 보는 월출산의 등짝은 완강했다. ‘봄은 바닥에서 온다’는 시인의 말은 한 치도 어김이 없었다.

풀재(풀치터널)를 넘어 강진 쪽으로 내려가자 문득 우두둑 월출산 손가락 마디 꺾는 소리가 들렸다. 두우∼둑 무릎 뼈 푸는 소리가 울렸다. 웅크리고 있던 월출산이 뼈를 풀며 우우 일어서고 있었다.

논두렁 마른 풀 타는 냄새가 훅 코를 찔렀다. 고소하다. 강진만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가슴을 흔들었다. 상큼한 매생이 냄새가 묻혀 있다. 검고 차진 뻘흙이 잔뜩 버무려져 있다.

무위사가 육자배기 주막집 주모처럼 선하게 웃으며 맞는다. 절 마당 매화 꽃망울은 탱탱 불어 터져 금방이라도 벙글 듯하다.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이 유난히 풍만하다. 봄바람이라도 난 걸까. 마치 콧노래를 부르는 듯 차림새가 날아갈 것 같다.

백련사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들도 꽃을 드문드문 피우기 시작했다. 이미 꽃모가지가 툭 꺾인 것도 있다. 푸른 잎사귀마다 윤기가 자르르하다. 동박새가 그 이파리 사이를 촉촉 조르르∼ 분주하게 오간다. 앙증맞다. 3월 중순이면 피보다 붉은 수천수만 송이의 꽃이 우르르 피어날 것이다. 윗녘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들은 4월 중순이나 돼야 슬슬 기지개를 켜고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다.

봄은 벌써 강진만 뻘밭 바닥에 상륙한 뒤였다. 선두는 이미 한참 앞서 우우 몰려가고 있었다. 선발대가 논두렁 밭두렁 넘고 풀재 넘어 영암을 함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연둣빛 강진 앞바다는 봄을 실어온 수송선들로 가득했다. 꼬막 캐는 아낙네들의 수다 떠는 소리, 돌아갈 채비에 바쁜 겨울 철새들의 깍깍대는 소리, 아지랑이 논둑길 오가는 농부들의 경운기 소리…. 죽도 가우도 비라도 외호도 내호도 까막섬이 한복 단추처럼 점점이 떠있었다.

육지는 늘 바다에 발을 적신다. 그리고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엔 만(灣)을 만든다. 강진만도 발가락 틈새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봄은 바로 그 발가락 틈새로 흠뻑 젖어온다.

다산초당 앞바다에서 시작하는 동쪽 해안도로(군도 18호선)는 어찔어찔 멀미 나는 ‘봄 길’이다. 길이 24km. 길은 바다 옆구리에 바짝 붙어 있다. 관중석과 경기장이 붙어 있는 축구전용경기장 같다. 가다 보면 땅끝 마을 해남이 나온다. 연둣빛 바다, 연둣빛 아기보리밭, 파릇파릇 마늘밭, 아릿한 푸른 하늘, 노란 갈대숲. 강진만 넘어 겹겹이 이어지는 산과 산들의 아슴아슴한 능선.

○꼬막 캐는 아낙네들 깔깔대는 소리 왁자지껄

느릿느릿 걸어도 4∼5시간이면 충분하다. 가다 보면 봄 바다의 여린 숨소리가 들린다. 새콤 달짝지근한 바다냄새가 난다. 나른한 봄볕에 눈꺼풀이 한순간 무거워진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 승용차로 엉금엉금 기어가도 된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한갓지기 짝이 없다.

경계에는 늘 꽃이 핀다. 바다와 땅이 만나는 이 해안도로에도 ‘아지랑이 꽃’이 핀다. 강진만은 금 캐는 뻘밭이다. 아무 곳이나 노다지가 가득가득하다. 꼬막 바지락을 캐거나 낙지 잡는 여인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왁자하다.

강진만 서쪽 해안도로는 국도 23호선이다. 칠량∼고려청자 도요지∼마량(馬良)으로 이어진다. 칠량은 바지락과 전통 옹기가 유명하고 마량은 제주도에서 말을 실어 내린 곳이다. 서울로 말을 보내기 전에 살을 찌운 곳이라 해서 마량이라 불렀다. 앞바다엔 까막섬이 있다.

이 길도 봄빛 가득 연두색이다. 언뜻언뜻 푸른 보리밭이 보이고 그 너머로 은빛 바닷물이 눈부시다. 하지만 번잡하다. 자동차들이 수시로 오간다. 길도 맞은편 군도 18호선처럼 바다에 바짝 붙어있지 않다. 승용차 드라이브 코스로 괜찮다. 먼발치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저물녘 황금빛에 물든 바다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설움이 울컥 쏟아진다.

봄꽃의 북상 속도는 하루 20km. 단풍의 남하 속도는 하루 25km. 봄은 더디 오고, 가을은 쏜살같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한순간. 해마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금세 더워지기 시작한다. 봄이 오면 쉬이 갈까 두렵고 봄꽃이 피면 곧 질까 또 걱정스럽다.

봄은 오기 직전 기다릴 때가 가장 달콤하다. 남녘에 동백꽃 피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렌다. 봄은 이미 강진 해남 완도 뻘밭을 한바탕 훑고 지나갔다. 서울로, 서울로 거침없이 북상 중이다. 두렵다. 남쪽 들녘에는 쑥 냉이 달래가 우우우 싹을 내밀고 있다. 이들은 봄 떼가 천안쯤 닿으면 시장 할머니 광주리에 얼굴을 내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봄이 서울에 도착하면 남쪽바다는 비릿한 여름 냄새를 풍길 것이다.

봄은 해마다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가. 해마다 새로 돋는 나뭇잎처럼 봄은 수천수만 년 그렇게 속절없이 오고간다.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들은 해마다 봄에 취해 어찔어찔 멀미를 한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다산초당∼백련사 오솔길 동백 꽃잎마다 훈풍 솔솔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에서 17년여를 살았다. 그중 읍내에서 7년, 다산초당에서 10년을 살았다. 처음엔 아무도 반겨 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동문 밖 주막집 할머니만 그를 따뜻하게 대했다. 다산은 그 주막집에서 4년 동안(1801∼1805) 얹혀살았다. 춥고 쓸쓸했지만 할머니의 정을 듬뿍 느낀 세월이었다.

다산이 숨통을 튼 건 1806년 강진읍 뒷산암자 보은산방(고성사)에 묵을 때부터였다. 당시 해남 대흥사의 큰 학승이었던 혜장 선사(1772∼1811)의 배려였다. 혜장은 나이가 다산보다 열 살이나 아래였다. 그는 다산을 스승 겸 글벗으로 사귀었다. 그는 다산에게서 유교경전을 배우고 자신은 다산에게 불경을 알려줬다. 사람들은 그를 ‘이름은 중, 행동은 선비’라고 불렀다.

다산과 혜장의 사귐은 다산이 1808년 봄 다산초당에 있을 때부터 절정을 이뤘다. 혜장이 그곳에서 800m 떨어진 백련사에 거주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수시로 백련사 동백 숲을 지나 다산초당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오갔다. 학문과 시를 논하고 삶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기간은 3년이 채 되지 못했다. 1811년 곡차를 너무 좋아했던 혜장(39세)이 병으로 쓰러졌던 것이다.

다산초당∼백련사 오솔길에도 봄빛이 가득하다. 솔바람 솔솔 불고 대숲바람 삽상하다. 산새들도 부산하다. 다산과 혜장은 그 오솔길에서 길을 찾아 헤맸다. 그들은 과연 길을 찾았을까. 소를 타고 소를 찾지는 않았을까. 길 위에서 길을 찾지는 않았을까. 봄은 말 없이 익어 간다. 동백꽃도 속절없이 피고 진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