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김병철을 키운 8할 ‘父情’

  • 입력 2007년 9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프로농구 오리온스 김병철(34)은 추석을 하루 앞둔 24일 일본 전지훈련을 마치고 귀국했다. 김포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기다리는데 갑작스러운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님이 위독하시니 빨리 와 달라”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진 김병철은 자신의 짐 가방도 찾지 않은 채 황급히 안양의 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 들어선 지 30분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막내가 보고 싶어 기다리신 것인지….” 김병철은 말문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올봄 위암이 발견돼 힘겨운 항암치료를 받다 6개월 만에 세상을 뜨셨다. 향년 66세.

“고생하시다 이제 좀 편해질 만했는데….”

김병철은 서울 대방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뒤 아버지의 지극한 뒷바라지를 받으며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로 떠올랐다. 낚시회에서 일하던 그의 아버지는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이었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했다.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프로에서도 경기 때마다 거의 체육관을 찾아 아들을 응원했다.

아버지에게 ‘의리를 중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김병철은 1997년 프로 출범 후 유일하게 단 한 차례도 팀을 옮긴 적이 없다.

용산중고에서 김병철을 가르친 양문의 씨는 “오늘의 김병철이 있기까지는 아버지의 열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 늘 성실하고 노력하는 태도를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고려대 시절 은사인 박한 대학농구연맹 회장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시며 열성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2남 1녀의 늦둥이 막내인 김병철은 자신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를 위해 대학 졸업 후 실업팀에 입단하면서 스포츠용품 대리점을 차려 드리기도 했다. 지난해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던 손자를 품에 안겨 드린 그는 올여름 돌잔치에 정작 아버지가 병세 악화로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의 뒤에는 이처럼 부모의 극진한 정성이 있기 마련이다. 가족의 의미가 소중해지는 한가위 연휴에 들려온 비보는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