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승표의 스포츠의학]모범 환자, 탈선 환자

  • 입력 2002년 11월 26일 18시 05분


《본보는 ‘은승표의 스포츠 의학’을 연재합니다. ‘코리아 스포츠 메디슨 센터’ 원장인 은승표 박사(코리아 정형외과)는 미국 버몬트주립대학 등에서 부상 치료와 재활운동을 전공한 스포츠 의학 전문의입니다. 그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엮어내는 생생한 처방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수요일마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스포츠광인 이모씨(29세)는 축구를 하다가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져 정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다음 날 문병을 간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 하얀 깁스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환자가 병원 체육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씨는 일주일 후 목발 없이 시내를 활보하였으며, 3주째부터는 가볍게 뛰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3개월 후에는 좋아하던 축구를 다시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수술 후에는 어김 없이 기다란 깁스를 다리에 감고, 침대에 누워 시간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재활 치료였다.

의사들도 이런 과정을 당연하게 여겼고 환자들에게는 “움직이면 큰일 납니다. 꼼짝 말고 누워있어요”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환자들 중에는 가끔 만화에 나오는 ‘악동’같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정형외과 병동의 군기를 흐트러놓는 이 ‘탈선 환자’들의 특기는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기. 목발 들고 뛰어다니기는 예사고 답답하다고 깁스를 풀어버려 레지던트를 혼나게 한다. 입원 기간 중 의사와 계속 실랑이를 벌이며 블랙 리스트에 오르는 이 ‘탈선 환자’들은 퇴원 후에는 병원에 잘 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의사들이 환자들을 추적 관찰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의 지시를 어겼던 얄미운 ‘탈선 환자’들이 ‘모범 환자’들 보다 경과가 더 좋았던 것이다. 답답하다고 석고를 풀어버려 레지던트와 한바탕 싸웠던 환자는 수술후 굳었던 관절 부위가 빨리 회복돼 일찍 걸을 수 있었으며, 목발을 사냥 총처럼 어깨에 메고 다녔던 환자는 다리 근력의 회복이 빨랐던 것이다.

의사들은 이 당혹스런 결과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하였고, 마침 급속도로 성장한 스포츠 과학의 발달 덕분에 인대의 강도, 근력 운동의 영향 등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지게 됐다. 그 결과 스포츠 부상의 치료에 ‘조기 재활 운동’의 개념이 도입됐다.

수술 후 일주일 만에 거리를 활보하는 이씨는 과거에는 ‘탈선 환자’ 취급을 받았지만 요즘에는 전형적인 ‘모범 환자’인 것이다.

(www.kosm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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