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교의 농구에세이]허재가 편하면 TG가 편하다

  • 입력 2003년 4월 7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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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 엑써스 전창진 감독의 핸드폰 수신음은 ‘어느 영화와도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이라는 대중가요다. 당초 전문가들은 챔피언결정전에서 TG의 체력 열세를 이유 삼아 동양 오리온스의 우세를 점쳤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TG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들이 챔피언이 된다면 그것은 한 편의 영화다. 4강전에서 절대 우세가 점쳐지던 LG에게 2연승 뒤 2연패. 결국 적진에 들어가서, 그것도 대역전승을 거두며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 TG다. 대구에서 먼저 꿈같은 2연승을 거둔 것도 그렇다.

사실 TG의 우승 시나리오는 금년이 아니라 내년 시즌 개봉 예정이었다. 군에 가 있는 신기성이 합류하고 김주성이 한 1년 프로 밥을 먹으면서 다듬어지는 시기를 내년으로 잡았으니까.

그러나 14살 아래인 신인배우 김주성과 농구를 해본 주연배우 허재는 뭔가 대박이 날 듯한 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신인 김주성 하나만 가지고도 관객동원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TV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젊은 시절의 김두한 역을 열연한 안재모처럼 어린 선수에게서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된다. 이제까지 주연이 아니면 출연을 거부해 왔던 허재는 그 순간 개성있는 조연배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다. 이것이 이 영화가 될 징조였다.

이번 시즌 들어 허재의 조연역할을 보면 커다란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1대1 공격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점이다.

허재는 작년 시즌까지는 웬만하면 1대1로 상대 골밑까지 파고 들었다. 마치 “나 아직 늙지 않았어” 하며 힘자랑이나 하듯…. 그 공격이 성공하면 몰라도 실패했을 경우는 한 선수가 공격 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비효율적 농구가 되고 허재 자신의 체력 또한 적잖게 소모된다.

그러던 허재가 올 시즌 들어서는 자신의 공격보다 동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려고 애쓴다. 요즘 그의 플레이는 아기새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의 모습이다. “주성이가 어디있나? 경민이도 하나 먹여줘야지”.

김주성은 “요즘 허재형 볼 받아 먹는 재미로 농구해요”라고 말한다. 그만큼 팀이 잘 돌아간다는 얘기. 필자가 보기에 허재는 지금 그의 농구 인생 중에서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농구를 하고 있다. 허재가 편하면 팀 전체가 편하다.

한선교/방송인 hansun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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