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사람들]자원봉사자 2인 다짐

  • 입력 2001년 11월 27일 20시 44분


▼본부 수송업무 조석제 씨“우리 민족의 흥겨운 문화 알리겠어요”▼

“외국 생활에서 받은 좋은 인상을 그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본부 자원봉사자로 근무할 예정인 조석제씨(26)가 자원 봉사자 모집에 지원서를 낸 동기는 특이하다.

현재 동국대 생명자원산업 유통학과 3학년인 조씨는 군 복무를 마친 뒤인 99년부터 2000년까지 1년여 동안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월드컵 자원봉사를 통해 당시 그의 캐나다 체류에 도움을 준 외국인들에게 ‘진 빚을 갚겠다’는 것.

“생소한 외국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리 없었죠. 그 때 현지인들은 물론, 다른 외국 친구들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일을 지금까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이 낯선 이방인에게도 참 친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년 월드컵에서 저도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이후 조씨는 길거리에서 지도를 들고 해매는 외국인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얼마전에는 노르웨이인 관광객이 길을 물어오자 아예 창덕궁과 경복궁을 함께 돌아다니며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씨는 내년 월드컵에서 수송 업무 자원 봉사를 맡게 됐다. 군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했던 경력을 살리기로 했다.

군 시절인 97년에는 무주 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파견돼 외국 선수단과 임원들이 타는 승용차를 운전했던 경험도 있어 내년 월드컵에서의 수송 업무가 그리 생소하지는 않다. 어학 연수를 통해 쌓은 영어 실력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내년에도 외국 선수단 또는 임원들의 차량을 운전하는 싶단다. 나이와 상관없이 여러 외국인 친구를 사귈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

조씨는 내년 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흥겨운 문화’가 세계에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신나고 흥겨운 사람들인데요. 경기장에서 열광적으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놀이 문화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점을 외국인들이 보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물론 젊은이로서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한국의 정서도 있다.

“쓸데없는 권위의식을 내세워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으려는 분들이 있잖아요. 별 것 아닌 일에도 지위를 내세워 남들보다 뭔가를 더 얻어내려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내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대표하게 될 ‘건장한 젊은이’ 조석제씨. 그는 “인정도 좋고, 관례도 좋지만 월드컵 현장에서만큼은 규칙이 앞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성원기자>swon@donga.com

▼‘VIP 서비스’노하우 발휘할 기회…FIFA임원안내 박희옥씨▼

“스튜어디스와 자원봉사자. 차이는 있지만 마음가짐은 똑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2002월드컵 때 국제축구연맹(FIFA) 패밀리의 의전담당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박희옥씨(50)는 “70년대 대한항공에서 5년간 승무원 생활을 했던 게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4월부터 새서울운동본부의 자원봉사자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홍보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올 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 때 FIFA 임원들의 안내를 책임진 그는 12월1일 부산에서 열리는 2002월드컵 조추첨 때도 세계 각국에서 오는 FIFA 관계자들의 의전을 담당할 예정.

박씨는 요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바쁘지만 너무 행복하다. 캐나다에 잠시 살던 88년 우연히 한번 해본 경험 때문에 시작했지만 요즘엔 “내가 자원봉사자가 되려고 비행기 승무원을 했던 것 같다”라며 ‘새로운 삶’에 아주 만족하는 모습이다.

“70년대엔 아무나 해외에 나갈 수 없었어요. 정부 고위 관리나 정재계 인사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VIP에 대한 서비스 노하우는 잘 알고 있어요.”역시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 박씨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 나라의 국민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데다 친철과 매너가 몸에 배 FIFA 임원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다루자 주위에선 ‘역시나’하는 감탄의 눈길을 보낸다고.

박씨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사람의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 FIFA 임원들과 대화하다보니 한국보다는 일본에 우호적인 생각을 더 갖고 있었다는 것. 일본사람들은 질서를 잘지키고 정직한 데 반해 한국 사람은 무질서하고 형식을 너무 무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물론 ‘따뜻함’과 ‘인정’ 때문에 한국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FIFA 임원들에게 한국의 장점을 최대한 홍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씨는 외국에서는 자원봉사자 하면 다시 한번 쳐다볼 정도로 높이 평가해주는데 한국에선 아직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는 걸 많이 느낀단다. 일반인들이 “얼마 받고 일해요”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노골적으로 ‘대가’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 물론 후자의 경우 지금은 크게 달라졌다.박씨는 최근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를 반기면서도 “계약서를 쓰지 않은 약속이지만 끝까지 봉사하려는 자세가 부족한 것 같다”며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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