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우는 소리는 이제 그만

  • 입력 2002년 1월 31일 15시 23분


최근 들어 한국 프로 농구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쿼터를 줄이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농구를 좋아하는 팬들과 실제로 경기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대세는 한국 프로 농구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를 줄이자라고 다들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민주주의의 장점이 그대로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다수의 의견'일 뿐인지는 한 번 살펴 봐야 한다.

분명 상황은 심각하다. 그 심각함이 뭔지는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현실만 이야기해보자. 고등학교 때 농구를 하는 선수들은 이제 장신 센터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예전보다 선수들의 신장이 훨씬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정통 센터가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국내 프로 농구에서 국내 선수가 주전 센터로 나오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국내 선수 중에서 주전으로 센터나 파워 포드의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선수는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적은 숫자일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농구 팬들은 외국인 선수 활약만 보는 것에 짜증을 내고 있고, 직접 코트 위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외국인 선수 축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럼 정말로 한국 프로 농구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는 축소 더 나아가 없어져야 하는가?

없어져야 한다는 사실엔 나 역시 동의한다. 거기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하나. 한국 남자 농구의 전체적인 수준이 적어도 국제대회에서 통용될 정도가 될 것.

둘. 3점 슛만 난사하는 소프트 바스켓볼을 벗어날 것

2002년을 맞이한 한국 남자 농구의 수준은 농구 대잔치의 그 시절보다 훨씬 나아졌다. 평균 신장, 평균 개인기술, 평균 체력, 평균적인 리그 수준 심지어 선수들의 평균적인 대우조차도 '코끼리 바스켓볼' 시절 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하긴 이 때가 더 나아다는 팬들도 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공헌자가 어느 팀에나 있는 두 명의 외국인 선수임은 확실하다. 자. 생각해보라. 만일 외국인 선수가 없었다면 서장훈이 있는 팀을 이길 수 있는 팀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과연 경쟁이란 게 프로 리그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나마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왔기에 서장훈이란 리그 수준을 넘는 선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매 시즌 접전이 벌어질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남자 농구의 수준은 세계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도대체 한국 남자 농구의 수준이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축구처럼 세계 40위권? 아니면 야구나 배구처럼 세계 10위권? 미안하지만 한국 남자 농구의 수준은 아무리 잘 봐줘도 세계 40위권 밖이다. 솔직히 더 정확하게 계산해보면 이 숫자는 더 내려갈 수도 있다. 이유? 세계 대회에 출전하면 거의 일 승을 거두기에 바쁜 한국 팀이 세계 선수권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저 아시아 지역에 한정된 티켓이 배분되기 때문이다. 만일 아시아 지역에 티켓 배정마저 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한국 실력으로는 아마 100년간은 세계 농구 무대에 진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다. 아시아 선수권에서 정말 운으로 중국에게 이긴 건 이야기 하지 말자. 당시 한국 팀은 전희철의 원맨 플레이에 힘입어 그저 승리를 주웠을 뿐이다. 만일 전희철이 그 날 보여줬던 플레이를 매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가 있을 자리는 동양 오리온즈가 아니라 시카고 불스다.

3점 슛 농구가 우리만의 특색이라고 말하는 건 이제 집어 치우자. 도대체 언제까지 그런 이야기를 할 것인가? 3점 슛 농구를 한다고 해도 페인트 존으로의 '침투 앤 디쉬'가 없는 3점 농구는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한국 선수들이 3점 슛 능력에 재능이 있으니까 3접 슛 위주의 농구를 하자구. 좋다. 그럼 한 선수의 3점 슛을 위해서 모든 선수들이 벽이 되어 움직여 주는 세트 오펜스를 당신은 한국 농구에서 본 적이 있는가? 미국 대학 농구나 NBA에서 보여주는 더블 스크린, 트리플 스크린 같은 전술을 본 적이 있는가? KBL에서 그런 비슷한 전술을 따라 하고는 있다. 그렇지만 전술의 완성도에 있어서 상위 레벨의 그것과는 비교하기 곤란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신장적으로 불리한 한국 농구가 살 길은 3점 슛을 던질 있는 선수가 동시에 강력한 페네트레이션을 보유하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센터에서 생기는 미스 매치를 포드나 가드에서 풀어보자는 말이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전제들이 현재 한국 프로 농구에서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결코 아니다. 현재처럼 한국 프로 농구 리그의 선수들이 그저 그런 실력을 보이고 있다간 KBL에서 외국인 선수는 결코 없어 질 수 없을 거다. 지금 필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현재도 세계 농구의 흐름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도대체 중국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왕츠츠나 유럽 최고의 선수들이 자신들이 조국에서 받던 연봉의 상당 부분을 손해보면서 진출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과연 우리 나라의 선수들 중에서 이런 모험의식이 있는 선수가 몇이나 있는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야구나 축구나 너무 많은 선수들이 그런 모험 의식에 빠져서 국내 리그가 침체에 빠지는 반면 한국 남자 농구계는 너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한 번 평균 연봉을 살펴봐라. 현재 한국 남자 농구의 평균 연봉은 국내 어느 프로 리그의 연봉보다 훨씬 높다. 물론 그 액수의 대부분이 주전급 다섯 명의 연봉으로 몰아져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실력에서 그만큼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한국 남자 농구는 주전과 후보의 실력 격차가 그 어떤 스포츠보다 큰 종목이다. 프로는 실력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 실력은 연봉으로 보상 받는다. 지금과 같은 주전에게 집중되는 연봉 구조는 한국 남자 프로 농구가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장의 모습을 한 번 들어보라. 대부분의 농구 팬들과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 축소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 팀 감독들의 대부분은 외국인 선수를 없애기 보다는 좀 더 나은수준의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방법을 원하고 있다. 물론 삼성처럼 국내 선수의 자원이 풍부한 감독은 없애자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일부 의견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현장에서 선수 자원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팀 간 전력차를 줄여주는 수단으로 외국인 선수를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그저 그런 외국인 선수만으로는 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오히려 좀 더 수준 높은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한 수단- 자유계약 혹은 연봉 제한 폐지-등을 요구하고 있다. 도대체 많은 사람들 심지어 자신의 제자들까지 외국인 선수 축소 혹은 폐지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들은 외국인 선수를 필요한 걸까?

자 이제 마지막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딱 한가지 뿐이다. 이제 우는 소리는 그만하란 거다. 실력에 비해 거품만 가득 들은 한국 남자 농구 선수들은 좀 더 치열한 경쟁이 필요하다. 적어도 그들이 외국인 선수들 같은 강제적인 경쟁자가 없어도 충분한 경기력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시합에 임하는 자세(아직도 농구 선수들의 주량은 어떤 종목에 비해 뛰어나다고 한다)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말이다. 현재 KBL에 오는 수준 이하의 외국인 선수들과도 싸워 이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한국 남자 농구의 미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추어 선수? 역시 마찬가지 논리를 적용하고 싶다. 그런 작은 경쟁조차 이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 거친 생활을 살아나갈 것인가? 농구 팬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선수들을 옹호하고 비호할 때가 아니다. 그들은 실력에 비해 충분히 대접을 받고 있다. 단지 농구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경쟁 없는 스포츠를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팬들은 좀 더 냉정하게 그들을 대해야 할 거다. 외국인 선수의 축소 혹은 폐지는 아직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그게 마땅치 않다면 우는 소리는 그만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시길.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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