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심판 문제를 해결하는 길

  • 입력 2001년 7월 4일 16시 02분


익명의 투서 한 장이 발단이 되어 아마추어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축승금 파문이 마무리 되어가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심판이사 한 명 만이 옷을 벗었을 뿐 전원 사표를 제출했던 집행부 임원들은 5명으로 구성된 수습대책위원회에 의해 재신임을 받았다. 고익동 대행은 "협회 최고 의결기관인 수습대책위원회에서 이미 재신임을 했기 때문에 내가 사표를 받을 권한이 없다"며 이사들의 사표를 모두 돌려줬다.

절차상으로는 명쾌하게 결론이 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맛이 씁쓸한 이유는 뭘까? 축승금 파문이 일어나기 전과 달라진 것도 없고, 앞으로 별로 달라질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축승금'이란 무엇인가? 대회에서 우승한 팀이 일정액의 사례금을 심판부 등에 돌리는 '관행'을 말한다. 21일 일부 언론사에 팩스로 전달된 익명의 투서에 따르면 올해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우승팀인 광주 진흥고가 두 차례에 걸쳐 500만원과 150만원을 심판들에게 전달했고, 대학봄철리그 우승팀 성균관대는 200만원을 건넸다고 되어있다. 물론 이 자체도 문제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데 문제에 심각성이 있다.

심판문제가 불거질 때 마다 항상 나오는 말이 '심판도 인간...' '오심도 야구의 일부...' 라는 따위이다. 하지만 문제는 실수로 인한 오심이 아닌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편파판정이다.

지난 6월 19일 대통령기 연세대-성균관대의 결승전에서 볼-스트라이크 판정에서 불이익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성대 학부형이 심판을 구타했다. 5월16일 종합선수권 성균관대-단국대의 준결승전. 1-1로 맞선 연장 10회에는 1루심의 석연치 않은 세이프 판정이 있었고 그 사이 주자는 결승득점을 했다. 누가 봐도 아웃이었다. 4월29일 한서고-중앙고의 대통령배 16강전은 4심 합의하에 진행된 주도면밀한 작전에 의해 어거지로 승패가 뒤바뀐 대표적 사례다. 이것은 잘못된 판정에 의해 명백하게 승-패가 갈라진 경우만 소개했을 뿐, 관심이 덜 한 지방대회와 지역예선에서의 황당무계한 오심까지 따지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그렇다면 왜 심판들은 고의적인 오심을 자행할까? 현재 대한야구협회 심판부에는 19명의 심판이 있다. 이들 중 모두가 전업심판인 것은 아니다. 와병 중인 1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일로 생계를 꾸려 가는 7명이 주말경기에만 배정되고 있어 10명 정도가 평일에는 매일 경기에 배치되고 있다. 대회가 많은 여름철의 경우 하루 2~3경기씩 나서야 할 때도 있다. 자연히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받는 보수는 어떤가? 경기당 주심 6만원, 누심 5만4,000원의 수당이 전부다. 당연히 심판만 봐서는 생활이 될 수가 없다. 심판문제가 연례행사처럼 불거지다 보니 지난해 협회는 비시즌 중 심판들의 생계를 조금이나마 책임진다는 차원에서 12명에게 경기가 없는 11월부터 3월까지 매달 연구수당으로 50만원씩 지급하기로 했으나 이것도 예산부족으로 12월까지만 지급됐다. 기본적으로 '검은 돈' 의 유혹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물론 이런 열악한 처우가 심판들의 고의적 오심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올해 초 한 야구선수의 학부모에게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자식 놈 야구 시키면서 한 달에 얼마정도 들었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백만원 정도 들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그냥 (야구부) 회비 내고 밥 사 먹이고 감독, 코치한테 인사 한번도 안하고 그러면 그 정도면 됩니다"

"그럼 더 든단 말인가요?"

"감독이 심판하고 룸싸롱 같은 데서 술 먹을 때가 있잖아요. 그럼 1시~2시쯤 돼서 전화가 옵니다. 어떻게 해요 나가서 좀 같이 먹다가 술값 내야지. 감독이 무슨 돈이 있나... 그런 거 다 합치면 얼만지 계산도 안돼요."

"그렇게 접대를 하면 효과가 있긴 있나요?"

"그럼요. 일단 불이익은 안 당하잖아요. 그리고 A같은 심판은 한번 밀어주면 끝까지 밀어주거든요"

"어휴, 그렇게 돈이 들면 웬만해서는 애들 야구 못시키겠네요"

"그렇죠. 초등학교 때 학부모들 직업을 보면 월급쟁이 하고 자영업 하는 사람이 반반이거든요. 그런데 애들이 커질수록 월급쟁이들은 점점 줄고 자기 사업하는 부모들이 늘어나서 고등학교 한 팀에 아버지가 회사원인 애들은 한두 명 있을까 말까에요. 그러니까 야구는 잘하는데 부모가 돈이 없어서 중간에 관두는 애들도 많죠"

위의 대화에서 보듯 실력이외에도 로비능력이 팀 성적을 좌우하고 전체적으로 고비용구조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나라 아마야구의 현실이다. 이것은 단순히 몇몇 사람을 자리에서 쫓아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한야구협회 고익동 회장대행은 심판문제의 해결책으로 “프로 출신 선수들을 심판으로 위촉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전임심판제를 도입해 연봉제 계약과 같은 방법으로 심판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보장하고 금전 문제와 같은 스캔들에는 가차없이 제재를 가해 다시는 야구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곧 있을 아마와 프로의 공동 대화 창구인 야구발전위원회에서는 심판교류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프로선수 출신들은 아마측의 배타적인 태도로 중고등학교 팀의 지도자가 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은 심판에도 마찬가지여서 대한야구협회에 프로선수출신 심판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협회가 각성해 심판문제해결을 위한 전향적 자세를 보여 주기 바란다.

쓰레기통의 악취를 없애기 위해서는 뚜껑을 열고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그저 쓰레기통의 뚜껑을 덮어놓는 것만으로 악취는 결코 가시지 않는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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