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포커스 피플]'엽서선생님' 박병관 교사

  • 입력 2004년 2월 8일 23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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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북 예천군 호명초등학교 2학년 2반이었던 코흘리개 이진석입니다. 선생님, 건강은 어떠세요.’(제자)

인천 부평구 갈산초등학교 교사 박병관씨(61)는 5일 러시아에 있는 제자에게서 반가운 인터넷 편지를 받았다.

25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제자가 보낸 편지여서 기쁜 마음에 몇 번을 다시 읽으며 병아리 교사시절을 떠올렸다.

1970년 11월 경북 예천군 용궁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한 박씨는 이듬해부터 제자들에게 엽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있는 제자는 박씨가 지금까지 엽서를 통해 사제 간의 정(情)을 이어가는 동창에게서 연락처를 얻어 편지를 보낸 것.

교직생활 33년간 제자들에게 엽서를 보내고 있는 박씨의 별명은 ‘엽서 선생님.’

계기는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엽서를 보낸 것이었다.

그는 신년 초와 어린이날, 졸업 시즌에 제자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는 내용의 엽서를 보내고 있다. 학년이 올라간 제자, 졸업해 중고교와 대학에 다니는 제자, 사회에 진출한 제자 등 모든 제자에게 엽서를 보낸다.

매년 평균 1800여통을 보내고 있으니 교직생활 동안 61만여통의 엽서를 보낸 셈이다.

그의 엽서에는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엽서에 그림을 그린 뒤 해주고 싶은 글을 쓴다.

‘타인의 행동을 자신의 입장에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 대개 남에 대한 첫인상이나 소문만을 듣고 경솔히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모독이다.’(엽서 내용)

박씨가 보낸 엽서를 받은 제자들은 인생을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며 답장을 보내온다. 때로는 제자의 부모가 전화를 걸어와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는 지금까지 제자들에게서 받은 답장을 모두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

처음 엽서를 보낼 때는 직접 써 보냈다. 그 뒤 보낼 엽서의 수가 많아지자 등사기로 밀어 보냈다.

신년 엽서를 보내기 위해 추운 겨울에 학교 등사실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러다 등사기를 구입해 집에서 엽서를 만들었다. 주소를 붙이는 일은 아내와 아이들이 거들었다.

그는 5원하던 엽서 우편요금이 현재 160원으로 31배나 오른 것을 생각하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요즘 ‘선생님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박씨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그들을 위해 애정을 쏟으면 선생이 존경받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엉터리 교사라고 말하는 그는 교사인 둘째 며느리를 만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사랑으로 대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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