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교수의 과학 에세이]신뢰는 ‘합리적 의심’에서 나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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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1957년 독일의 그뤼넨탈사(社)는 ‘탈리도마이드’라는 화합물로 만든 수면제를 시판했다. 인체에 무해하다고 해서 의사의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약이었다. 특히 임신부들의 입덧 완화에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 약을 복용한 임신부가 기형아를 출산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진위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5년여 만에 판매가 금지됐다. 약의 부작용으로 1만2000명에 가까운 기형아가 태어났으나 회사는 2012년에야 최초로 공식 사과를 한다.

사고로 하루에 365명이 죽은 사건과 1년 동안 매일 한 명씩 죽은 사건 중 어느 것이 더 불행한 일일까. 물론 당신은 같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사건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인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시판된 이래, 지난 20년여 동안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피해자도 수천 명에 달한다. 더구나 많은 사망자들이 산모와 영유아였다. 이 제품을 한 번이라도 사용한 사람이 수백만 명으로 추산되기 때문에 피해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끔직한 대형 사고임에도 그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덜 받아 왔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가습기에 넣어 분무하는 바람에 폐에 심각한 손상이 생겨 사람들이 죽은 것이다. 최근 관련 청문회에서 우리는 진저리나게 익숙한 모습을 본다.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 측 인사들은 대부분 불참했다. 참석한 사람들도 대개 발뺌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역학조사로 원인이 규명된 것은 2011년이었지만 아직까지 이 일로 처벌받거나 보상받은 사람은 없다.

기업은 대개 이윤 추구에만 관심이 있다. 따라서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정부의 몫이다. 필자 같은 과학자조차 가습기 살균제를 몇 번 사용한 적이 있다. 이건 개인이 확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동물실험에서는 부작용이 없었음에도 인간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흡입 독성 실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문제가 불거지고 2012년 동물실험에서 부작용이 확인되었음에도 옥시는 그 결과를 은폐했다.

사회에서 신뢰는 중요하다. 당신이 거래를 할 때마다 받은 돈이 위조지폐가 아닐지 걱정해야 한다면 사회는 붕괴될 거다. 하지만 신뢰는 무조건적인 믿음에서 오지는 않는다. 수많은 비리가 잘못된 믿음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달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두고, “우리를 믿어 달라. 부정한 대가를 받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라고 말로 호소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런 법이 필요 없을 만큼 신뢰가 쌓이기까지 규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합리적 의심은 신뢰를 쌓아가는 핵심 요소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험 결과를 놓고도 의심한다. 결과가 놀라울수록 더욱 그렇다. 실험실에 갓 들어온 대학원생들은 날마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결과를 발견한다. 호들갑 떠는 신참의 말에 선배는 심드렁하게 이것저것 확인할 리스트를 말해 주기 마련이다. 그의 노벨상은 곧 물거품이 된다. 근대 철학을 연 것도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데카르트에서 시작된다. 충분한 의심을 통과한 과학 이론에만 법칙이라는 신뢰가 주어진다.

우리가 법과 제도를 만들고 조약과 계약을 하는 것은 상대를 믿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 결과를 확인하고 다듬어가듯 신뢰를 높이기 위함이다. 합리적인 사회는 믿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물질적 증거를 보여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의 의심은 생명을 지킬 만큼 충분치 못했다. 여기에는 그런 제품 판매를 허가해 준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하지만 “의도가 뭐냐”며 합리적 의심조차 거부하는 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바탕에 있을지도 모른다.

옥시의 과학자들은 제품의 유해성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제기한다. 옥시의 과학자들이 제품 생산을 막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가 자신이 하는 일의 사회적 결과에 대해 과학적 의심을 하지 않을 때, 그 과학은 재앙이 될 수 있다.

탈리도마이드 스캔들 때, 미국에서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당시 식품의약국(FDA)의 심사위원이던 프랜시스 켈시가 안전성을 입증할 자료가 불충분하다며 허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제약회사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 이런 행동을 했다면 주위로부터 “너, 작작 좀 해라. 우리 좋게 좋게 가자”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합리적 의심을 하는 사람이 비난받는 사회는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과학적 합리성이 필요한 이유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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