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당신 ‘때문에’, 당신 ‘덕분에’

<57> 켈리 클라크슨-Because Of You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불행한 삶을 보며 난 당신같이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당신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며 나를 통해 당신의 삶을 만회하려 할 때, 난 울지 않는 것으로 당신에게 저항했죠. 이제 당신은 없고 울음을 참을 필요가 없지만 당신 때문에 아직도 나는 두렵고, 아무도 믿을 수가 없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안전한 길만 걷고, 그래서 공허해진 내 삶이 수치스러워요.”

인간 언행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감정입니다. 감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친밀한 대상과의 관계죠. 좋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경험하면 긍정적 동기가 생기고, 나쁘고 불만족스러운 관계 경험은 부정적인 동기를 유발합니다. 감정이, 특히 중요한 대상과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감정이 우리의 판단과 결정과 언행을 유발하는 가장 큰 동기죠.

부정적인 감정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그것이 지긋지긋해서 감각이 둔화되고 경직됩니다. 감정적인 자극을 느끼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노력 때문이죠. 그 빈 곳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으로 채워집니다. ‘부적응적 방어기제’라고 하는, 과거의 고통을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을 이제는 필요 없는데도 계속 쓰는 것이죠.

켈리 클라크슨도 부모와의 경험 때문에 자신과, 세상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예상밖에 할 수 없어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힘겹게 토로합니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내 현실을 직시할 수만 있어도 변화와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과거를 과거이게 하고,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긍정적인 자극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 내 믿음과 예상이 교정될 수 있죠.

인간이 자신감을 가지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①발전의 방향을 설정하고 방해하는 원인들을 파악하고, ②발전과 방해물 제거의 방법들을 설정하고, ③그 방법을 행동에 옮기고, ④그래서 실력이 늘고, ⑤중요한 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⑥자신감이 생겨 더 좋은 판단과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발전의 선순환을 타야 합니다.

말로는 쉽지만 어렵습니다. 노력해도 그 부정적인 대상이 기대하는 만큼 결과를 이룰 수 없다고 예상하는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죠. 그럴 때 우린 못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해봤자 별 득이 없다며 멀쩡한 포도를 신포도로 만들곤 합니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설날이 다가옵니다. 좋은 관계를 경험하는 최고의 무대 중 하나는 밥상 앞이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경계심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을 때 아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이해받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아이가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받아들여 주세요. 그냥 들어만 주세요.

한 번 들어주는 것으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최소한 예상했던 관계 경험과는 달랐다고, 조금은 좋았다고 느낄 것입니다. 분노가 조금 가라앉으면 청소년기 후기 이상의 아이들은 자신이 했던 말을 되짚어보고 곱씹어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언어화한 것들이 자신의 진심이었는지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자해하기 위해 했던 것인지 가려낼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설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