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31>어머니, 나의 어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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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과 회색의 배치―화가의 어머니’.
‘검정색과 회색의 배치―화가의 어머니’.
‘검정색과 회색의 배치―화가의 어머니’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1834∼1903)의 대표작입니다. 그림 속 화가의 어머니는 절제되고, 명예로운 삶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화가는 달랐습니다. 아름다운 여성과 호화로운 식기가 있는 삶을 탐했지요.

21세 화가는 홀로 프랑스로 미술 공부를 떠났습니다. 이후 어머니와의 재회는 더 큰 자유를 찾아 정착한 영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에서 발발한 시민전쟁을 피해 어머니가 아들집에 왔거든요. 아들은 어머니의 재등장에 긴장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했지요. 친구들에게 어머니 성품을 알렸고, 실내 장식도 검소하게 바꾸었어요.

훗날 미국 최초 어머니의 날 기념우표를 장식할 그림은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1871년 가을, 청교도였던 어머니를 모델로 자유분방한 아들이 붓을 들었습니다. 그림 속 67세 노모는 지금까지 미술 속 어머니들처럼 미소가 자애롭지도, 눈길이 인자하지도 않습니다. 평소 모습 그대로 책임감과 도덕성으로 무장한 모습이었지요. 여기에 일본에 관한 화가의 관심도 엿보입니다. 그림 속 어머니는 기모노 천이 드리우고, 다다미가 깔린 방 안에 미동조차 없이 앉아 있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로 어머니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화가는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해방감을 만끽하느라 안부조차 묻지 않았지요. 그리고 2년 뒤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그토록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어머니의 죽음이 화가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모처럼 어머니와 의기투합해 완성한 그림 판매를 보류할 만큼 죄책감에 시달렸지요. 화가에게 어머니는 부담스러운 존재인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생명의 근원이었지요.

노숙인 인문학 종료 후 전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수업 중 여러 차례 그린 자화상을 선보이기로 했지요. 마지막 시간, 40대 수강생이 지금껏 그려왔던 자화상에 머리 모양과 옷 색깔만 바꾼 그림을 제출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랍니다. 자신의 모습에 곱슬머리를 붙여보고, 여자 옷도 입혀보며 어머니를 상상해 왔답니다. 자화상 대신 어머니 초상화를 전시해도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원망과 그리움의 존재, 어머니를 그렇게라도 불러보고 싶었겠지요. “왜 안 되겠느냐”고 답하며 화가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든 어머니는 멋지게 그릴 것이다.’ 하지만 그림에 쏟아진 세상의 찬사에 겸손하게 화답했던 화가에 대한 말은 차마 전하지 못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검정색과 회색의 배치#화가의 어머니#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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