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생명에 대한 예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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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영상(領相) 상진(尙震)이 말하기를 “어찌 차마 살아 있는 짐승을 보면서 잡아먹을 것을 생각하랴” 하였으니, 이 말에서 마땅히 경계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비록 닭이나 개 같은 미물이라 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간혹, 저것은 고기 맛이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또는 삶아 먹어야 한다느니 구워 먹어야 한다느니 하고 평을 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문득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짐승만 보면 있는 대로 다 잡아먹으려고 하니, 이른바 약육강식은 짐승의 도이다(所謂弱之肉强之呑, 禽獸之道也).

이익(李瀷·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 7권 ‘인사문(人事門)’에 실린 내용입니다. 상진은 조선 명종 때의 재상입니다. 두 분의 말씀은, 아무리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짐승일지라도 그것이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같은 책 9권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 참형을 받게 되었을 때 스스로 말하기를 “내 평생에 큰 허물은 없었으나, 다만 궁을 나올 적에 임금의 명이 급박하였기에 더운 계절에 집 짓기를 시작하였다. 옛집을 철거하다가 기왓골 사이에 있던 참새 새끼 수천만 마리가 다 죽었으니, 내 이를 차마 못할 짓이었다고 늘 생각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 때문에 받는 앙화(殃禍)인가” 하였다.

상진이 외아들을 잃고 울면서 말하기를 “내 일찍이 남을 해칠 마음을 갖지 않았는데, 다만 평안감사가 되었을 적에 백성에게 매일같이 파리를 잡아 바치도록 하니, 이때 저자에서는 파리를 파는 자까지 있었다. 이것이 그 앙갚음이란 말인가” 하였다. 이 몇 가지 일이 비록 반드시 그렇다고는 못 하겠지만, 또한 군자로서 물(物)을 사랑하라는 경계가 될 수 있기에 아울러 기록하는 바이다(此數事, 雖未必然, 而亦可爲君子仁物之戒, 故병記之).

이공은 선조의 일곱째 아들인데, 광해군이 폐모(廢母)를 논할 때 종친으로서 함께 참석한 죄로 훗날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에게 닥친 비극 앞에서 오히려, 자기 때문에 무고하게 희생된 생명들을 떠올리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비심이 오로지 부처님만의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이익#성호사설#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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