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김덕수]박정희 현판도 엄연한 역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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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 공주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김덕수 공주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요즘 현충사가 시끄럽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내리고 숙종이 하사한 사액 현판을 걸자는 주장 때문이다. 최근 문화재청은 재고 끝에 박정희 현판을 계속 걸기로 했고, 이순신 종가는 진본 난중일기의 전시를 중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숙종은 1704년 충청도 유생 서후경의 상소를 계기로 1706년 현충사를 건립하고 이듬해 ‘현충(顯忠)’이라는 휘호를 하사했다. 박 전 대통령은 낡고 초라한 옛 현충사를 1967년 현재처럼 장엄하게 현대화했다.

특히 박정희의 이순신 사랑은 극진했다. 현재 현충사관리소장은 5급 공무원이지만 박 전 대통령 시절에는 1급 공무원이 맡았다. 그의 파워는 충남도지사보다도 셀 정도였다. 박정희는 매년 ‘충무공 이순신 탄신제’를 직접 주관하고 그의 충효정신을 현대화하는 데 온갖 정성을 다했다. 한 해에 10번 이상 현충사에 참배한 적도 있었다. 현충사를 방문할 때는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밝은 기분이었고 콧노래까지 부르곤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일본 육사 출신이고 딸이 탄핵을 받았다는 이유로 현충사에서 그의 흔적을 지우려는 것은 가장 역사적이지 않은 태도다. 박정희의 친일 여부와 정치적 공과는 그와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죽은 이후에 정직한 사가(史家)들에 의해 평가될 것이다. 그런 작업을 위해서라도 현충사의 박정희 현판은 보존돼야 한다.

진정한 역사는 영욕을 함께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부분에서는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고, 욕된 역사에서는 반성과 참회를 통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와신상담의 지혜를 다져야 한다. 정말 이순신의 15대 종부가 고민해야 할 사항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박정희 현판이 아니라 이순신의 생일(1545년 음력 3월 8일)을 우리나라 달력에 표기해 달라고 주장해야 한다. 역사를 파괴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김덕수 공주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현충사#박정희 친필 현판#숙종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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