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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박근혜와 오바마, 그들의 각처유주

입력 2017-04-19 03:00업데이트 2017-04-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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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장기 체류하며 회고록을 집필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된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테티아로아 섬. 사진 출처 더 브랜도 홈페이지
조성하 전문기자
지난달 세상은 두 전직 대통령의 상반된 모습을 목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구속된 후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데 반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남태평양의 산호섬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시작한 것이다. 실패한 대통령과 성공한 대통령의 차이는 이렇듯 극명했다. 박 전대통령은 지금 12.01m² 독방에서 한 끼 1440원짜리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하루 숙식비가 1만1000달러(약 1250만 원)의 프렌치 폴리네시아(타히티로 통칭되는 프랑스령 섬나라) 내 초호화 리조트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다.

오바마의 프렌치 폴리네시아행은 지난달 16일 알려졌다. 단언컨대 이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거기가 어디고 대체 어떤 곳이기에 퇴임한 미국 대통령이 회고록을 쓰며 장기간 머물겠다는 것인지. 그곳은 테티아로아. 유럽연합(EU) 면적의 바다에 달랑 118개 섬이 다섯 개의 군도(群島)를 이룬 프렌치 폴리네시아, 거기서도 관광 섬 타히티와 달리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3년 전 ‘더 브랜도’란 리조트가 개장하며 실체가 드러난 게 전부인 미지의 섬이다.

그 섬을 나는 10여 년 전 다녀와 동아일보 지면에 소개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렇다 보니 그 뉴스를 읽는 순간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오바마가 왜 거길 찾았고 하필이면 거기서 회고록을 집필할 계획을 세웠는지 그 배경이 내 나름대로 가늠돼서다. 그러면서 부러움에 질투도 났고 현실이 너무도 현격하게 달라 참담함을 느꼈다. 우리는 탄핵에 이어 구속까지 된 대통령 때문에 국격마저 훼손당해 처참한데 박수 속에 퇴임한 그는 천상의 리조트에서 치적을 즐거이 회고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으니.

테티아로아는 수도 파페에테가 있는 섬 타히티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아톨이다. 아톨은 모투(부서진 산호섬) 여러 개가 동그라미를 이룬 환상(環狀)형의 산호초(珊瑚礁). 이게 세상에 알려진 건 할리우드 스타 말런 브랜도를 통해서다. 1960년 ‘바운티호의 반란’ 촬영차 타히티에 왔던 그는 이걸 사들인 뒤 방갈로 몇 채를 지어 별장 섬으로 썼다. 일설엔 함께 출연한 현지 처녀와 염문이 퍼지자 몰락한 포마레 왕조의 옛 왕이 결혼을 조건으로 싸게 팔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는 거기서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고 남매도 두었다. 취재 당시 방갈로는 쇠락한 상태였는데 현지 부인이 25년째 운영 중이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운티호의 반란’이 1789년 타히티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포악한 블라이 선장에 대한 선원의 집단 응징)이고 핵심은 우루라는 빵나무란 것이다. 이건 불에 구운 뒤 나무로 패면 빵 맛을 내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다. 당시 영국은 카리브 해 연안의 식민지에서 사탕수수 집단농장으로 큰돈을 벌어들였는데 그 수고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 노예의 몫이었다. 영국은 노예의 식비마저 아끼겠다며 타히티에 자생하는 빵나무 이식을 추진했고 임무 수행 중이던 영국 해군의 바운티호에서 사건이 터졌다. 반란 선원은 어떤 항구에도 정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도에도 없던 무인도(핏케언)로 도피했고 19년 후에야 발견됐다.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 중 최초의 하와이 태생. 아버지는 케냐(아프리카)인, 엄마는 아일랜드계 백인이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인 유학생과 재혼한 엄마와 함께 자카르타에서 4년 살았다. 그런 이유로 부모 양편의 이복(異腹) 간은 아프리카 아시아 미국 유럽의 다문화이다. 그런 복잡한 혈통을 그는 2006년 인터뷰에서 “작은 유엔 같다”고 했다. 그런 그의 하와이 사랑은 남달랐다. 재임 중 여름휴가를 늘 하와이에서 보낼 정도였다. 하와이 원주민은 폴리네시안이고 그게 합중국의 50번째 주가 된 건 그가 태어나기 2년 전. 그런데 프렌치 폴리네시아는 하와이 원주민 조상의 고향이다. 그러니 이곳이 오바마에게는 정서적으로 친근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고 테티아로아는 신대륙 흑인의 조상인 카리브 해 노예 역사를 다룬 영화로 세상에 알려진 섬이다. 그러니 거기서 회고록과 자서전을 쓰겠다는 생각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세상의 중심은 늘 자기와 주변이다.

이런 두 대통령이 이런 생각으로 이끈다. ‘각물유주(各物有主·세상 모든 물건은 주인이 따로 있다)’가 아니라 ‘각처유주(各處有主·세상 모든 처소는 주인이 따로 있다)’라는.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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