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개궂다와 짓궂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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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3월의 새 학기에 가장 달뜨는 이는 누굴까. 조기교육에 내몰린 탓에 설렘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제 짝꿍이 궁금한’ 초등학교 입학생이 아닐까 싶다.

하는 짓이 심하고 짓궂게 장난하는 아이를 개구쟁이라 한다.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갑자기 나타나 고무줄을 끊고 내빼면서 웃는 모습에 딱 맞는 말이다. 북한에는 쫄랑대며 되바라지게 행동하는 아이란 뜻의 ‘발개돌이’라는 말도 있다.

“어이구, 이 개구진 녀석.” 친구들과 놀다 잔뜩 흙을 묻히고 돌아오면 어머니가 옷을 털면서 하시던 말씀이다. 하지만 ‘개구지다’는 우리 사전에 없다. ‘개궂다’가 올라 있지만 ‘짓궂다’의 경북 사투리에 머물러 있다.

짓궂다와 개궂다를 표준어와 사투리의 관계라고 하기엔 왠지 찜찜하다. 말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언중도 구분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짓궂다는 장난스럽게 남을 괴롭고 귀찮게 하는 것이어서 부정의 의미가 살짝 배어 있다. 반면 개궂다는 말썽은 말썽인데, 다소 귀엽다는 뜻도 담고 있다.

아이들의 작은 손을 귀엽게 일러 ‘조막손’이라 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물건 따위를 ‘조몰락조몰락’하는 아이들의 동작을 떠올린 때문인지 모른다. 허나 조막손은 ‘손가락이 없거나 오그라져서 펴지 못하는 손’, 즉 장애를 지닌 손을 일컫는다. 여리고 포동포동한 어린아이의 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고사리 같은 손’ ‘고사리손’이다. 사전이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받아들여 ‘고사리손’을 표제어로 삼은 건 잘한 일이다.

아이와 관련해 거슬리는 표현이 또 하나 있다. 어린아이의 나이 뒤에 ‘-짜리’를 붙이는 것. 표준국어대사전 예문에 ‘열 살짜리’가 올라 있어선지 신문 등에도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짜리’가 나이를 세는 말로 적당하다면 ‘오십 살짜리 장년’ ‘여든 살짜리 할아버지’도 쓸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어색하다. 어린아이의 나이를 세는 말로 ‘-배기’란 좋은 표현이 있는데 왜 굳이 ‘짜리’를 써야 할까. 어린아이에겐 ‘어떤 나이에 이르다’란 뜻의 ‘나다’를 써도 괜찮다. ‘두 살배기’나 ‘두 살 난 아기’로 쓰면 된다는 얘기다. 어떤가. ‘두 살짜리’는 그저 나이만 알려주지만, ‘두 살배기’나 ‘두 살 난 아기’는 성장 과정의 어떤 시점을 의미하는 것 같아 훨씬 정겹지 않은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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