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사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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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실마리.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 또는 어떤 일이나 사건의 첫머리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사단(事端)이 있다. 그런데 사단을 ‘사달’과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사달은 ‘사고나 탈’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니 두 단어는 비슷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큰 사단이 났다’처럼 쓰면 안 된다. ‘사달이 났다’고 해야 맞다. 두 단어를 혼동하는 이유는 사단의 ‘단(端)’을 ‘시작’이 아닌 ‘끝’으로 이해해 ‘일이 잘못됐다’는 뜻으로 쓰기 때문. 사단은 발단과 사촌이니 잘 찾아야 하고, 사달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일사불란(一絲不亂)’도 ‘일사분란’으로 아는 이가 많다. 일사불란은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않을 만큼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움을 뜻하는 분란(紛亂)에 이끌려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일사분란이란 낱말은 아예 없다.

실마리, 일사불란이라는 단어를 만든 실의 세계에도 재미난 낱말이 많다. 실을 세는 단위만도 타래, 꾸리, 토리, 올 등 다양하다. ‘실낱같은 목숨’이라고 할 때 실낱은 바로 실의 올이다. 가늘어서 위태롭다는 뜻이다. 실타래는 실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도록 한데 뭉치거나 감아놓은 것을 말한다. ‘토리’는 실몽당이를 세는 단위인데 실꾸리나 실반대라고도 한다.

‘감고, 뽑고, 꿰는’ 실의 세계에서도 서러움을 겪는 낱말이 있다. 실을 꾸려 감은 뭉치를 뜻하는 ‘실뭉치’다. ‘뜻이 똑같은 형태가 몇 개 있을 때 그중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는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라 ‘실몽당이’에 표준어 자리를 내줬다. 실뭉치는 표준어인 ‘실’과 ‘뭉치’가 합쳐진 낱말로 입말에서는 실몽당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다. 그러니 실뭉치를 실몽당이의 잘못으로 묶어둘 게 아니다. 북한은 실몽당이와 실뭉치, 둘 다 인정하고 있다.

어떤 일의 시작이 잘되고 못됐는지를 비유할 때 ‘첫 단추를 잘 뀄다’거나 ‘잘못 뀄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단추는 잘 ‘끼웠다’라고 해야 옳다. 단추는 풀고, 끼우는 것이며 실은 바늘에 ‘꿰는’ 것이다.

‘최악의 노는 국회’라는 19대 국회가 ‘마침내’ 끝나간다. 다음 국회는 첫 단추를 잘 끼워 사달 없이 정국을 술술 풀어갔으면 좋으련만. 허나 기대는 늘 배반을 당하기에 걱정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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