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윤상호]피와 죽음으로 지킨 NLL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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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조천형 하사와 황도현 하사는 기관포 방아쇠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가슴에 안은 채 숨져….”

2002년 6월 30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 사령부 기자회견장. 전날 북한군과 지옥 같은 교전을 치른 장병들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과 울분이 뒤범벅된 흐느낌도 들려왔다. 장병들은 북한의 도발이 얼마나 악랄했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를 생생히 증언했다.

북한 경비정은 아군 고속정 357호의 조타실을 기습 포격해 발을 묶은 뒤 끝까지 쫓아와 무차별 사격했다. 수백 발의 적탄 세례에 357호의 선체는 처참하게 부서졌고, 내부는 사상자가 뒤엉켜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고막을 찢는 폭음과 외마디 비명, 다급한 신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선체 바닥은 사상자들이 흘린 핏물이 강을 이뤘다.

화염과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함교에선 의무병인 박동혁 상병이 정장(艇長)인 윤영하 대위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하지만 적 포탄을 맞고 절명한 윤 대위의 몸은 싸늘히 식어 있었다. 그 옆엔 부장(副長·부지휘관)인 이희완 중위가 쓰러진 채 승조원들을 지휘했다. 그의 왼쪽 다리뼈는 포탄 파편을 맞아 으스러졌고, 오른쪽 다리는 파편이 관통해 살이 터져 나갔다. 빗발치는 적탄 속에서 부상자를 돌보던 박 상병도 등과 복부 등 온몸에 100여 개의 파편상을 입고 쓰러졌다.

357호 장병들은 적탄에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온몸이 찢기면서도 미친 듯이 응사했다. 그날 윤 대위 등 4명이 전사하고 한상국 하사가 실종됐으며 19명이 다쳤다. 이후 박 상병이 교전 83일 만에 숨지고, 한 하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전사자는 6명으로 늘었다. 박 상병의 뜨거운 심장이 마지막 박동을 끝낸 순간 그를 치료했던 한 군의관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구멍이 났다”고 일기에 적었다. 전사자 6명에겐 1계급 특진과 함께 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제2연평해전은 그렇게 끝났다. NLL 사수는 젊은 영웅들의 피와 죽음의 대가였다.

하지만 김대중정부는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교전 이틀 뒤에 열린 합동영결식에 군 통수권자는 오지 않았다.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도 불참했다. NLL을 지킨 영웅들을 홀대한다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한 달 뒤 북한이 쌍방 책임 운운하며 “우발적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전통문을 보내자 정부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노무현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추모식이 열렸지만 대통령은 끝내 불참했다. 3주기 추모식부터 국방장관이, 5주기 추모식에 총리가 참석한 게 전부였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제2연평해전이 ‘잊혀진 전투’라며 피눈물을 삼켰다.

노무현정부는 왜 NLL을 지킨 영웅들에게 그토록 냉담했을까. 최근 공개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고 그 궁금증이 풀렸다.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NLL을 ‘골칫거리’라고 하면서 “무슨 괴물처럼”, “(건드리면) 시끄럽긴 시끄럽다”고 폄훼했다. 김 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한다며 NLL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전번에 서해사건 때도 실제로 흔적 남은 게 뭐야”, “바다에 종잇장 그려놓은 지도와 같이 북방한계선은 뭐고, 군사경계선은 뭐고”라며 거들었다.

그들에게 NLL은 남북 화해평화의 걸림돌이자 애물단지였다. 평화를 가장한 북한의 NLL 무력화 계략에 홀린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에게 NLL을 사수한 영웅들은 안중에 없었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피와 죽음으로 NLL을 지켜온 역사를 끝내자. 더이상 피와 죽음이 없는 평화를 이루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NLL과 서해를 피와 죽음의 바다로 만든 북한의 도발 책임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제2연평해전의 전사자들은 좌파 성향 정부가 대북 퍼주기로 얻은 ‘헛된 평화’의 제물이었다. 두 번 다시는 거짓 평화의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된다. 북한의 진정한 사과와 NLL 무력화 포기 없이는 피와 죽음으로 쓰인 NLL의 역사는 잊혀질 수도 없고, 잊혀져서도 안 된다고 나는 본다. 그것이 NLL의 비극적 역사를 단절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요체가 아닐까. 11년 전 서해를 핏빛으로 물들이며 NLL을 지켜낸 여섯 영웅들의 영전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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