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윤상호]연예병사 특혜 논란에 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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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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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지금 들어가면 언제 또 나올까….”

20여 년 전 군 입대 후 첫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째깍째깍 귀대 시간이 다가올수록 1분 1초라도 더 바깥 공기를 만끽하고 싶은 ‘졸병’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칼 다림질’한 군복 차림으로 휴가증을 손에 들고 부대 정문을 나설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은 20대 초반의 청춘에게 ‘일주일 남짓한 자유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운 가족과 친구, 아늑한 집과 다시 헤어져 ‘푸세식’ 화장실과 맛없는 ‘짬밥’, 고된 훈련과 근무, 선임병의 등쌀이 기다리는 갑갑한 병영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자정이 지나면 재투성이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의 심정이 이랬으리라’고 되뇌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휴가 복귀 날이면 부대 정문 앞에서 손목시계에 눈을 고정시킨 채 착잡한 표정으로 줄담배를 피우던 장병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일부 병사는 조금이라도 더 해방감을 맛보려다 귀대 시간에 늦는 바람에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도는 ‘얼차려(기합)’를 받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부대 복귀 후 꿈처럼 흘러간 첫 휴가의 향수를 달래며 군 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다음 휴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2년 가까이 사회와 단절돼 엄격한 군율(軍律) 속에서 지내는 병사들에게 휴가와 외박, 외출은 천금 같은 ‘활력소’이자 ‘오아시스’일 것이다.

새해 벽두에 불거진 연예병사 가수 비(본명 정지훈)의 특혜 논란을 보면서 과거의 군 생활을 떠올린 건 기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가 군 입대 후 ‘나흘에 한 번꼴’로 휴가나 외박, 외출을 사용해 톱스타 여배우와 ‘밀회’를 즐겼다는 보도가 나가자 국방부 홈페이지 등엔 누리꾼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이러고도 일반 장병에게 최전방 철책을 지키라고 할 수 있나” “군 사기를 좀먹는 연예병사 제도를 폐지하라”는 비판과 성토가 이어졌다. “연예병사가 ‘연애병사’냐”는 비아냥거림과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험담이 섞인 댓글도 줄줄이 달렸다.

잦은 공연 연습과 외부 지원 활동을 해야 하는 연예병사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군 당국의 해명은 들불처럼 번진 여론에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각종 행사에 동원돼 혹사당하는데 휴가만 갖고 호도한다’는 일부 연예 기획사 측과 연예인들의 반박도 비판 여론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군 당국은 공무(公務)로 외출을 나갔다 ‘사적 접촉’을 가진 비에 대해 군인복무규율 위반으로 7일간의 근신 처분을 내리는 한편 연예병사 특별 관리지침을 마련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파장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군 관계자들은 “연예병사의 이점을 활용해 ‘휴가’와 ‘스타 여자친구’를 손쉽게 얻은 데 대해 군 안팎의 상대적 박탈감이 일거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비의 근무 실태를 살펴보면 일반 병사들이 소외감을 느낄 만한 소지가 크다. 비는 지난해 3월∼12월 말 약 10개월간 71일의 휴가와 외박, 외출을 받았다. 연예병사로 활동하기 전 육군 5사단에서 일반 병사로 근무하면서 사용한 휴가와 병가 등 23일을 합치면 총 94일로 늘어난다. 일반 병사보다 2배 이상 병영을 나와 ‘일상의 자유’를 만끽한 셈이다.

연예병사는 젊은 세대의 군 복무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긍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평소 동경하던 스타들이 군 관련 홍보활동을 하면서 군 복무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청소년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거액의 몸값이 매겨진 스타들이 군에서 거의 공짜로 무대에 올라 군 홍보에 기여하는 공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군 복무 여건의 ‘공정성’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갈수록 특권이나 특혜로 비칠 수 있는 관행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군도 더는 거스를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연예병사 제도의 빛과 그림자를 잘 살펴 특혜와 형평성 시비가 재발하지 않도록 군 당국이 운용의 묘를 살리길 바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연예병사#특혜#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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