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욕망할 자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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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피카, 음악가, 1929년
렘피카, 음악가, 1929년
20세기 중반까지 여성 예술가에게 에로티시즘은 금기의 영역이었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 환상을 충족시키는 대상이었을 뿐 성적 주체가 아니었다.

만일 여성 예술가가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작품을 창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마디로 인격적 자살이다. 즉 사회적 매장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성에게만 여성의 관능미를 창작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던 시절, 폴란드 출신의 여성 화가인 렘피카는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대담하게 그림에 표현했다.

이 그림은 남성 화가가 표현한 관능미와 여성 화가가 표현한 관능미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스모키 눈화장, 도자기처럼 매끈한 무결점 피부, 빨간색 립스틱을 바른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마치 사이버 미녀 같다.

렘피카는 메이크업과 패션을 강조했다. 왜? 인공미가 자연미보다 성적 매력을 강화한다는 것을 경험과 본능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렘피카는 대중잡지의 표지모델로 선정될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데다 도덕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화려한 남성 편력과 양성애 등의 은밀한 성체험까지 솔직하게 그림에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렘피카의 그림은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남성의 욕망에 순종하는 여성상을 거부하고 사랑과 욕망을 추구하는 섹시한 여성상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자들이 약해서가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 사랑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아니라 삶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제 렘피카가 왜 에로틱한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에로티시즘은 여성으로서의 자각이며 존재의 이유였던 것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에로티시즘#여성 예술가#렘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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