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친구보다 편안하고, 연인보다 사랑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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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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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와이어스, Master Bedroom, 1965년, 종이에 수채
앤드루 와이어스, Master Bedroom, 1965년, 종이에 수채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사랑, 대개는 온전히 남아 있는 사랑. 그들이 완전히 체험할 수 없었던 사랑, 혹은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타버리지도 못한 사랑.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사랑. 개는 그 사랑의 화신이다.’

피에르 슐츠의 ‘개가 주는 위안’에 나오는 구절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 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대답 대신 미국의 국민화가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을 보여주리라.’

그림의 배경은 소박한 농가의 침실이다. 개 한 마리가 주인의 침대에 올라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어있다. 이런 버릇없는 강아지! 자기 서열이 가족 중에서 제일 높은 줄 착각하고 있네. 웃음 짓다가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홀로 빈방에 남겨진 외로운 개에게서 상처받은, 소통하고 싶은,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의 모습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는 어떻게 상실과 소외, 고요, 심지어 빛을 향한 갈망까지도 그림에 표현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독특한 미술재료와 절제된 색채, 단순한 구성과의 조화에 있었다.

*물감은 유화물감보다는 수채나 템페라를, 색채는 갈색조를 주로 사용한다.

*사물의 형태는 단순하게, 동일한 형태(그림 속의 벽면, 창문, 침대는 모두 사각형이다)를 반복해서 그린다.

*사진처럼 사실적이고 정교한 묘사력과 섬세한 감수성을 결합했다.

그 결과 대상의 성격과 체취, 영혼까지도 그렸다는 와이어스만의 화풍이 태어난 것이다.

와이어스의 그림에는 개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개는 실재하는 개이면서 의인화된 개이기도 하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애견가였다는 것.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개가 주인의 체취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또한 개에게 햇빛이 잘 드는 침대에서 잠잘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우리는 이 그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인간에게 가장 구체적이고 따뜻한 위안의 대상이 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명옥 사립미술관협회장
#개#앤드루 와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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