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아버지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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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내게 어린 시절 그의 꿈은 마부가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추운 겨울 귀를 덮는 털 달린 모자에 긴 장화를 신고 마차를 끄는 건장한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아홉 살 소년은 “나도 커서 아버지처럼 마부가 되겠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났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왜 화를 내는지 알지 못했다.

고학을 하며 야간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연히 소월의 시집을 읽고 시의 세계에 빠져들었지만 책을 살 돈이 없었던 그는 서점에서 빌린 시집을 통째로 공책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옮겨 적은 시집이 수십 권에 달할 즈음에 그의 꿈은 시인으로 바뀌었다.

“… 마굿간에 깃든 조랑말의 똥그랗고 검은 눈동자 속에 얼비친 별 하나 별 둘을 들여다보며 별밤지기로 놀았습니다//이런 날 밤이면 이따금 조랑말의 말머리에서 찰랑거리던 놋쇠방울소리가 밤하늘로 날아올라 별빛에 부딪쳐서 영롱하게 바스라지는 소리들을 눈이 시리도록 우러렀던 나만의 황홀한 밤이 있었습니다.”

서정춘 시인의 “동화”라는 자전적인 시다. 가난뱅이 소작농에 마부였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던 시인의 마음이 곧 시심(詩心)이 되었다.

한편 알코올 의존증자인 아버지가 미웠던 소녀가 있었다. 읍내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아버지에게서 떠난다는 기쁨이 무엇보다 가장 컸다고 한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무의촌 근무를 조건으로 하는 국가 장학금으로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보건진료소장이 되었다.

국문과에 가고 싶었다는 그녀는 무의촌 진료소장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생생한 이야기를 메모했다가 지난 가을에 나와 인연이 닿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그 책을 본 한 방송국의 제의로 그녀가 작사한 시를 노래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뜻밖에도 그녀가 지은 노래의 제목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흘러서야 “아버지의 술잔에 담긴 것이 술이 아니라 눈물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가슴 먹먹한 노래다.

아버지의 가난과 고독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일 것이다.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나의 아버지가 1919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6·25전쟁, 혁명과 격동으로 이어진 험난한 시대를 지나 95세에 이르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우리의 아버지를 이해했어야 했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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