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거절을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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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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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탁도 못하고 거절도 잘 못한다. 그런 성격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신혼 초였다. 가까운 사람의 돈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덜컥 큰돈을 빌려줬는데 이자는커녕 원금도 받지 않았다. 차마 달라는 소리도 못하고 그 대신 이자를 물어주는 나를 보고는 남편이 한마디 던졌다.

“사람이 왜 그렇게 마음이 약해. 돈을 빌려달라면 거절을 해야지, 왜 남에게 꿔서까지 빌려 주냐고!”

실은 나도 내가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내가 왜 당신과 결혼한 줄 알아?”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남편이 대답을 못했다.

“몰라. 왜 결혼했는데?”

“거절하지 못해서 한 거야. 노총각이 프러포즈하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거든. 내 그 성격 덕에 결혼해 놓고 지금 와서 그 성격을 탓하면 안 되지.”

열을 내던 남편이 어이가 없는지 오히려 나를 구슬렸다.

“알았어. 나를 거절하지 못한 건 아주 잘한 거야. 근데 이제부턴 거절도 하면서 살자.”

이후 남편은 남들이 “두 분은 어떻게 결혼했어요”라고 물으면 “이 사람이 거절하지 못해서 결혼했대요”라고 말하여 묻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 말에 한 분이 ‘거절하지 않는 모임’이라는 제목의 모임이 있다는 말을 했다. 사업가 일곱 명이 모여 만들었는데, 회원들끼리 서로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모임이 깨지는 것이 회칙이라고 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임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것보다 상대방이 들어주기 곤란한 부탁은 아예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주는 베스트셀러들을 읽다 보면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 단호하게 ‘노!’라고 말하라” 등등의 지침이 나온다. 물론 나 역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가끔 “노!”라고 말할 줄도 알게 됐지만 아직도 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묻게 된다. 이것이 최선의 대답일까?

실은 남편은 내게 이렇게 프러포즈했었다.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 되겠다”고….

나는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 최고의 남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다. 아무려면 거절하지 못해 결혼했을까. 그러나 거절하지 못해서라도 결혼하는 남녀가 많았으면 좋겠다. 너무나 조건을 따지다 보면 “예스”라는 답이 나올 수가 없고, 그래서 거절 잘하는 싱글이 넘쳐나는 게 아닐까. 바야흐로 봄이다.

윤세영 수필가
#거걸#결혼#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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