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좋은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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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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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해를 무사히 보내고 한 살 더 먹었으면 참 장한 일인데, 주위를 둘러보면 대체로 그런 반응이 아니다. 하긴 ‘동안(童顔)’ 외모가 큰 자랑거리인 세상이다. 50대 여인이 30대로 보여서 아들하고 외출하면 연인인 줄 착각하고, 심지어 아들의 여자친구로부터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는 이야기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곳곳에서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라는 구호가 난무한다.

그런데 나이에 주눅 드는 건 중장년층만이 아니다. 새파랗게 어린 20대도, 젊고 매력 있는 30대도 무조건 자신보다 어린 나이를 부러워한다. 예전에 어른들이 “참 좋은 나이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연로하시니까 팔팔한 젊음이 좋아 보이시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그런데 요즘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젊은 사람들이 몇 살 더 어려 보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걸 보면 ‘이건 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한 사진가가 “여자 사진 잘 찍는 법 가르쳐줄까요? 사진 찍고 나서 3년 후에 주면 돼요”라는 농담을 할까. 사진을 금방 건네주면 나이 들어 보인다는 둥 불평이 많지만 3년 후에 주면 “예쁘게 나왔다”며 좋아한다는 것이다.

젊음은 아름답다. 그리고 공평하다. 누구든 젊은 시절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에는 젊음이 좋은 줄 실감하지 못하고 엄벙덤벙 보낸 것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시에서 시인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를 기울이고,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고 노래한다. 또한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고 말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제의를 했을 때,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무슨…”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필경 그 사람은 나이를 핑계 삼는 것이고, 아마 수년 후에는 “그때 시작할걸”이라고 후회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미래에 두지 않고 과거에 두는 사람이다. 즉 자신의 현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면, 나이를 먹는 일이 억울한 게 아니라 그 순간순간에 좋은 줄 모르고 사는 것이 억울한 일이다. 내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 나이가 있다면, 그때 그 나이여서 진정 행복했나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마 좋은 줄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 그렇듯이.

사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에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너무 늦게 깨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10년 전을 돌아보며 한탄하지 말고 10년 후를 미리 내다본다면 바로 지금, 각자 주눅 들어 하는 자신의 나이가 아직 참 좋은 나이임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 남은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으니까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
#동안#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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