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435>동막 갯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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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 갯벌 ―김원옥(1945∼ )

송도 첨단 도시 만든다고 둑을 쌓아 놓은
그때부터
그대 오지 않았어요

하루에 두 번 철썩철썩 다가와
내 몸 어루만져 주며
부드러운 살결 간직하게 해주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검게 타버렸네요
터지고 주름투성이가 되었네요

그때는 나도 무척 예뻐서
내가 좋아 찾아오는 사람 많았어요
난 너무 행복해서
쫑긋쫑긋 작은 입 배시시 웃으며
곰실곰실 속삭였어요
“어서 오세요
내게 있는 모든 것 다 드릴게요
바지락도 있고 모시조개도 있어요
게도 있고 낙지 다슬기도 있어요”
앞가슴 풀어헤치고 아낌없이 주었지요

연인들도 아암도 갯바위에
서로 어깨 맞대고 앉아
해내림을 보고 있으면
내 짭짜롬한 냄새는
그들 어깨에 머물곤 했는데
이제는
오는 이 없네요
희망 가득 싣고 분주히 오가던
통통배
부서진 몇 조각 남아
그때의 이야기 들려주려 하지만
귀먹은 작업복들만 와서
짓밟다 가네요


‘하루에 두 번 철썩철썩’ 밀물 들던 갯벌이 있었단다. 바지락 모시조개 게 낙지 다슬기도 풍부해서 갯마을 사람들의 ‘희망 가득 싣고 분주히 오가던/통통배’, 경치도 무척 예뻐서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도 많았단다. 그런데 ‘첨단 도시 만든다고 둑을 쌓아 놓은/그때부터’ ‘오는 이 없네요’. 바닷물이 들지 않아 쩍쩍 갈라지고 시커멓기만 한 갯바닥이 한없이 펼쳐져 있는데 굳이 찾아올 사람이 있겠는가.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만이 방치된 배의 부서진 조각들을 무심히 밟으며 오갈 뿐.

동막 갯벌의 옛 모습을 익히 알고 아꼈을 화자는 그 변모에 속이 상했을 테다. 그래 황량하고 스산해진 갯벌을 그윽이 지켜보며 귀 기울여 들은 말을 전해준다.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였던가요? 그리고 당신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였던가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검게 타버렸네요’. 내가 품고 있던 그 많은 생물들도 검게 타 죽었겠지요. 나는 이렇게 사라져가요. 우리는 이렇게 사라져가요.

그 자리에 지금은 송도 신도시가 들어서 있다. 착하고 아름답고 건강했던 여인으로 의인화한 갯벌의 한숨 섞인 목소리를 빌려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생태계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을 이끌어내는 시다.

황인숙 시인
#동막 갯벌#김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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