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방과 후 선행학습 허용 개정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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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초중고교의 방과 후 학교 과정에서 선행학습이 금지돼 왔습니다. 학원들은 선행교육에 관한 광고도 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달 17일 교육부가 초중고교의 방과 후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선행학습을 무조건 금지하면 사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시행 6개월 만에 선행학습금지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처사라는 반발도 만만찮습니다. 다시 논란이 뜨거워진 선행학습금지법, 이에 대해 교육계의 서로 다른 의견을 알아봅니다. 오피니언팀 종합 》

▼ 개정안, 일반高 경쟁력 회복 숨통 틔워줘 ▼


박인규 인헌고등학교장
박인규 인헌고등학교장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선행학습금지법’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다.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복습·심화·예습과정 등 다양한 교육수요가 반영된 방과 후 학교의 개설을 허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과 후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선행학습금지법 시행 이후 겨울방학에 방과 후 학교를 못해 상급학년을 준비할 학생들을 방치해야 했는데 이제야 학교의 교육경쟁력이 조금이나마 살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원래의 입법 취지를 위해 여전히 학교에서는 방과 후 학교를 막론한 모든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도 있다.

그동안 선행학습 금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학원은 내버려두고 학교 교육만 규제함에 따라 학교, 특히 일반계 고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학원이 학교를 감시하면서 선행학습을 시킨다며 학교를 관계기관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하는 일도 있었고, 교육청이 단지 상급학년 교과서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다는 이유로 교과내용을 평가한 것에 대해 해명서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수목적고는 학생 집단의 특성상 2학년이면 입시과목을 대부분 이수할 수 있지만 일반고는 3학년까지 가야 겨우 가능하다 보니 특목고 학생에 비해 입시 과목을 반복 학습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러니 일반고 학생들은 학교를 불신하고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번 개정안이 이런 문제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서 보다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공교육 정상화는 학교교육을 위한 지원이나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현행 선행학습금지법이나 개정안 모두 학교교육을 규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교육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과 그것을 평가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평가보다 중요한 것이 가르치고 배우는 일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온통 평가에만 관심을 갖고 평가도 숫자로 표시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평가라고 여긴다. 다들 점수의 노예가 돼서 높은 점수를 위해 사교육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부당하게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길을 법으로 막으면 공교육이 정상화될 것으로 생각해 학교 평가를 규제하는 선행학습금지법이 나왔을 것이다.

최근 강조되는 교육의 역할은 핵심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이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습득하고 앞으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역량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학교교육 정상화는 학생 각자의 필요와 능력에 맞추어 자신의 핵심 역량을 기르는 교육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에 따르면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높은 데 비해 학습동기는 낮다. 학습동기가 낮으면 자신을 성장시킬 수 없고 미래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각종 법규와 지침으로 학교의 교육활동을 일일이 규제하는 바람에 학교는 학생들에 맞춰 교육을 설계하고 실시할 재량권이 없다. 일반계 고교에는 천차만별 수준의 학생들이 한데 모여 있고 꿈과 진로도 모두 제각각인데 온갖 규제로 모든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국·영·수로 대표되는 주지교과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점심 먹으러 가는 곳, 졸업할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 수용소에 불과하다.

학교교육은 점수를 많이 따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교육기관과 점수 따기 경쟁을 할 수 있는 기관도 아니다. 학생들은 점수 따는 기계가 아니라 모두 소중한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우리 교사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학교가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교육 경험을 제공해줄까?” “미래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르치면 안 되고, 저것은 평가하면 안 된다고 규제하는 법보다는 이러한 고민을 도와주는 법이 절실하다.

학교가 명분만을 앞세운 법의 규제에서 벗어나 학생의 성장에 온갖 노력을 집중할 수 있게 지원을 많이 받고 신뢰를 받게 되면 좋겠다.

박인규 인헌고등학교장

▼ 선행학습, 공교육 병들게하는 불량식품 ▼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지난해 9월 이른바 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되었다.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과 방과 후 과정 모두 선행교육을 못하게 한 것이다. 학교 바깥의 사교육기관의 선행교육도 금지해야 마땅한데 이를 법률에 담지 못했으니 반쪽 법률이라 아쉬웠다. 그런데 느닷없이 교육부가 최근 방과 후 학교에서의 선행교육을 허용하는 법률 개정에 나섰다. 반쪽을 다시 반쪽으로 만들겠다니 시행 6개월 만에 너무한 것 아닌가.

교육부가 방과 후 과정에 선행교육을 허용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일부 학교와 교사들이 방과 후 학교에서까지 선행교육을 금지하니 학생들이 죄다 학원으로 몰려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국적인 정밀 조사를 해보고 판단할 일이다. 일부의 주장을 침소봉대할 일이 아니다.

일단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법 시행 이전에도 방과 후 선행 과정 운영이 거의 없었으니 변화가 없다. 문제는 고교인데, 선행교육의 핵심은 수학이다. 우리 단체가 3년 전 전국 고1 학생들 8000명을 대상으로 중학생 시기에 고교 수학 선행학습을 얼마나 했는지 조사한 적이 있다. 일반고 진학생의 73%, 자율형사립고 특수목적고 진학생의 95%가 고교 과정을 선행학습 했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그들이 고등학생이 된 후 고교 진학보다 더 치열한 대학입시를 앞두고 학원의 선행교육을 끊었을 리가 없다. 이미 이렇게 학원에서의 선행교육을 할 만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방과 후 학교를 막으니 학원으로 몰려간다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처사다.

학교 선행교육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로 교육부가 제기한 것은 학원에 가기 어려운 지방이나 저소득층 학생들에 대해 교육적 배려를 하기 위함이라 한다. 방과 후 학교에서 선행교육을 하지 않으면 이 학생들에게 교육적 배려를 못하는 것인가? 선행교육은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교란하고 학생들의 학습능력에도 해를 끼치는 불량식품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금지한 것 아닌가. 그런데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불량식품을 사먹기 어려우니 학교 안에서라도 먹여줘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그렇게 꼭 먹여야만 하는 것이라면 애초에 금지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학교가 정상적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어려운 현실은 분명히 있다. 학교가 선행교육의 압박을 받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대학 입시에서 영향이 가장 큰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험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수능 수학 범위만 해도 고교 3년 배우는 과정이 모두 포함된다. 거기에 EBS 교재 8권까지 풀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고교가 2년 내에 3년 과정을 다 끝내고 3학년 때는 수능 문제풀이에 몰두한다. 3년 배울 분량을 2년에 끝마치려면 방과 후 선행학습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학교 현실이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학교와 교사들의 주장 앞에 교육부는 ‘그럼 수능 범위를 줄여서 학교가 선행교육을 할 필요가 없도록 해드리겠다!’, 이렇게 선언하는 게 옳다. 교육부도 올 9월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교육과정 양을 줄이려 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과 연동해서 수능 범위를 줄이면 학교의 혼란은 일거에 해소된다. 그 시원한 길을 놔두고 스스로 만든 법률을 후퇴시키는 일에 나서다니 딱하기 그지없다.

학교도 그렇다. 지금까지 학교 안팎의 선행학습 범람으로 학교 교육이 심각히 교란됐던 상황이 겨우 진정되고 있는데 사교육을 따라 학교도 허용해 달라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외국에선 선행학습을 시켜서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가 있으면 교사들이 자신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엄히 나무란다는데, 언제까지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며 부러워만 할 텐가. 그런 교사들이 대한민국에는 정녕 없단 말인가.

학교와 교사를 위한 법률을 어렵사리 만들어놓고 또다시 내팽개칠 작정인가. 사교육과 경쟁하는 학교 교육이 아니라 사교육과 독립된 학교 교육이 되도록, 잘 끼운 첫 단추마저 다시 풀어버리지 말자. 당장 좀 힘겹다고 사교육 따라가자 하는 것은 교육부도 학교도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가.

윤지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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