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쌤 장민경 선생님의 좌충우돌 교단이야기]<9>재문이의 일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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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5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다. 어느 날 아이들이 부러움 섞인 말투로 내게 전했다.

“선생님, 재문이는 팽이가 엄청 많아요. 우리 엄마는 안 사 주는데.”

2년 전, 비싼 팽이 모으는 게 유행일 때라 아이들이 한창 팽이를 가지고 다니며 서로 바꾸거나 자랑했다.

“그래? 재문이는 팽이가 몇 개 있는데?”

“한 20개쯤? 엄청 많아요.”

“한 개에 얼만데?”

“만 원 정도 하는 것도 있고 그래요.”

엄청 놀랐다. 재문이는 이따금 가출을 했는데, 집안 형편이 상당히 어려웠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재문이 팽이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오후 5시쯤 재문이를 데리고 교실로 오셨다.

“제 말을 얘가 안 듣기도 하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선생님이 알아봐 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시작된 질문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팽이를 산 돈은 장롱 속에 있던 신용카드로 인출한 것이고, 암호는 예상한 것이 우연히 맞았으며, 수련회에 간 사이 대형마트 등에 가서 카드를 사용하여 계산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의 거짓말과 혼란이 섞여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재문이의 어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혼내는 것도 선생님께 맡긴다며 먼저 자리를 떠나셨다.

며칠간 고민을 하다가 재문이에게 내린 벌은 ‘1년 동안 나의 비서로 생활하며 나와 함께 퇴근하기’였다. 재문이는 다행히도 꽤 착실하게 벌을 수행했다. 매일 남아서 숙제도 하고 재시험 보는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하며 비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2학기가 돼 재문이가 학급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내가 예뻐하기도 했지만 아이들도 재문이를 신뢰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재문이를 칭찬할 때마다 부모처럼 기뻤다.

사람의 본성 하루아침에 안 변해


그런데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이듬해에 뼈저리게 느꼈다. 6학년이 되어 사춘기가 오고,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재문이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겨울방학 즈음에는 담배를 피우고 가출을 했다.

“선생님, 재문이가 며칠째 집에 안 들어와요.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재문이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고 밤 11시까지 학교주차장과 인근 빌딩, 주택의 주차장을 찾아 헤맸다. 재문이 어머니는 재문이가 며칠 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많이 우셨다. 1월 말, 재문이가 또 집을 나갔다. 개학식에는 학교에도 오지 않았다.

재문이가 같은 반 친구인 태영이네 집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문이 부모와 함께 태영이 어머니를 커피숍에서 만나 대책을 의논했다. 그런데 재문이가 항상 가출의 핑계로 삼던 아버지는 대화가 어려운 분이셨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이야기는 아예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며 아내 탓만 했다. 중국 교포인 재문이 어머니는 고개를 떨궜다.

2학기 후반에 재문이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태영이네 집에 아이들이 다같이 있는데 재문이도 거기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에는 무작정 찾아가 보기로 했다. 눈이 많이 오는 오후였다. 태영이네 대문이 열려 있었다. 부츠를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재문이가 어울리는 친구들이 다 있었다.

“뭐하고 있었어?”

“형이 볶음밥 만들어 줘서 다같이 먹었어요.”

“재문이는?”

“재문이는 안 왔는데요?”

“어디에 있는지 몰라?”

“네.”

잠시 침대에 앉아 방안을 둘러보았다. 나가려고 하는 찰나, 옷걸이에 익숙한 점퍼가 눈에 띄었다.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이재문, 너 딱 걸렸으니까 좋은 말 할 때 나오자.”

내 말이 끝나자 점퍼가 움직였다. 옷걸이 속에 옷처럼 숨어 있던 재문이가 꾸물꾸물 나왔다. 배신감이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라 재문이를 보자마자 욕이 나왔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다. 단체로 벌을 세우고 재문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우리는 그날 셋이 같이 울었다. 이 일로 태영이 할머니에게 나도 많이 혼났다. 애가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다 부모 잘못이고 선생 잘못이라고. 어르신 말씀이 백번 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재문이의 욕설과 괴롭힘에 지친 한 학생의 부모에게서 신고를 받았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다. 자치위원회 회의 당일, 교감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부르셨다. 태영이 어머니께서 가지고 오셨다며 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전에 재문이 부모와 커피숍을 갔던 때부터 일자별로 나에 대한 기록이 씌어 있었다.

특히 태영이 집에 갔던 눈 내리던 날에 있었던 일이 상세히 적혀 있었는데 ‘장민경 선생님 무단 침입’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태영이 어머니가 교감선생님께 나를 ‘무단 침입 및 인권 침해’ 등으로 고소할 것이라며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다리가 풀렸다. 교사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나의 신념과 정의가 흐려지고 회의에 빠져들었다.

교사의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지

올해 6월, 재문이가 남의 집 옥상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것을 주민이 신고하여 경찰이 출동했다. 술과 담배는 주변 슈퍼와 편의점에서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람들은 나에게 이제 관심 갖지 말라고 조언한다. 괜히 나서다가 다치지 말라고 걱정한다. 어디까지가 나의 몫일까. 재문이에게 전화를 하려다 문득 ‘무단 침입’이라는 말이 떠올라 주춤한다. 묻고 싶다. 교사의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지, 어떤 선을 넘으면 무단 침입인지.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초등학교#장민경#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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