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쌤 장민경 선생님의 좌충우돌 교단이야기]<4>“놀림 당하는 친구, 우리가 지켜줬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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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여름 방학 전 ‘학교폭력예방 및 대응을 위한 전문가 과정 60시간 연수’ 공문을 받았다. 의무는 아니지만 지체 없이 신청했다. 수차례 학교폭력에 맞닥뜨렸고, 많은 고민을 해 오던 터라 ‘이참에 제대로 배워 보자’ 생각했다.

한 달 동안 진행된 연수 강의는 상담센터소장, 피해 학생 학부모회장, 변호사, 대안학교 교장 등 학교폭력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전문가들이 맡아 효과적이고 실제적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은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재현 소장의 ‘평화샘 프로젝트’로, 학교폭력에 침묵하는 다수의 책임을 역할극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력자’ ‘동조자’ ‘소극적 조력자’ ‘방관자’ ‘방어자’ ‘소극적 방어자’도 있다.

가해자: (100원짜리 동전을 내밀며) 야, 이거 가지고 빵 사 와!

피해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100원으로 어떻게 사 와….

동조자: 사 오라면 사 와!

조력자: (피해자를 손가락질하며) 크크크.

(이때 소극적 조력자는 그 상황을 지켜보며 속으로 재밌다고 생각한다. 방관자는 힐끗 쳐다보고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때 방어자가 머뭇거리며 등장한다.)

방어자: 네가 먹을 빵은 네가 사 와야지!

가해자: 너 죽고 싶냐? 네가 사 올래?

(소극적 방어자는 이 광경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도 이렇게 역할극을 해봤다. 첫 단계에서는 가해자가 한 명인 경우,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가해자가 여럿인 경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방어자가 여럿인 경우를 설정한다. 역할극에서 나는 피해자를 맡았다. 연극이란 걸 알면서도 가해자들이 한마디 던질 때마다 움츠러들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면서도 방어자가 많을수록 힘을 얻게 된다는 걸 느끼게 됐다.

당장 반 아이들에게 역할극을 시켜 봤다. 평소 연극을 할 때는 역할 분담을 아이들 자율에 맡기는데, 이번에는 내가 관여했다. 못된 역할을 서로 안 하려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가해자 역할 해 보고 싶은 사람?”

“저요! 저요!”

반 아이들 대부분이 가해자를 희망했다. 충격이었다. 피해자는 서로 안 하려 해 역할을 나누는 데 애를 먹었다. 역할극을 끝내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피해자 역할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가해자랑 동조자 조력자들이 저한테만 뭐라고 하니까 무서웠어요. 그런데 나중에 방어자들이 늘어나니까 속이 시원했어요. 가해자를 혼내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혼내 주고 싶었어요?”

“네. 연극인데도 가해자가 너무 밉고 싫었어요. 여러 명이 제 편을 들어주면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가해자 역할은 어땠어요?”

“처음엔 재밌었어요. 그런데 방어자들이 생기면서 피해자 편을 드니까 짜증났어요.”

“방관자 역할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저는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았어요. 가해자가 무서웠거든요.”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아이들은 서로의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 녀석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며칠 뒤 점심시간, 방관자 역할을 했던 마르고 여린 여자아이가 내게 달려왔다.

“선생님! 우리가 지켜 줬어요!”

“응? 뭘? 누굴?”

“성운(가명)이가 옆 반 애한테 놀림을 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반 애들이 ‘하지 마라’라고 얘기하고 성운이를 데려왔어요!”

자랑스럽고 뿌듯한 표정으로 승전보를 전하는 그 아이는 이제 방관자가 아니라 당당한 방어자의 모습이었다.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초등쌤 장민경 선생님의 좌충우돌 교단이야기#교단이야기#빵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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