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권순활]‘빚의 복수’ 누구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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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0일 1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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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기획재정부 예산실 공무원들은 내년 예산안을 짜느라 요즘 일에 파묻혀 산다. 남들은 휴가철이라지만 평일 야근은 필수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엄두도 못 낸다. 예산을 더 따내려는 다른 부처와, 거품을 줄이려는 재정부 관료의 줄다리기도 눈에 띈다. 재정부는 세 차례의 자체 심의와 관계부처 장차관 회의, 당정 협의를 거쳐 9월 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국제 금융시장 뒤흔든 ‘채무 쇼크’

정부 경제팀 사령탑인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예산실에 두 가지 지침을 내렸다. 정부 지출 증가율이 총수입 증가율을 밑돌게 하고, 불요불급한 예산은 과감히 삭감하라는 내용이다. 박 장관은 그젯밤 필자와의 통화에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친 배경에는 소득 이상의 소비, 세입에 비해 과도한 세출, 세금부담 능력을 넘는 과도한 복지시스템이 있다”며 “남의 일 같지 않다”고 걱정했다. 정치권의 재정팽창 압력에 맞설 자신이 있느냐고 묻자 “힘이 닿는 한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다짐했다.

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보물단지를 화수분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이런 보물단지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공상을 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천국이나 극락이라면 모를까 인간 세상에 화수분은 없다. 분수에 넘치게 돈을 끌어다 쓰면 반드시 ‘빚의 복수’가 따른다. 폭탄 돌리기로 위험을 잠시 늦출 수는 있어도 폭탄이 돌다보면 어디에선가 터지기 마련이다.

증시에서 한몫 잡으려고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샀다가 이달 초처럼 주가가 폭락하면 투자 차익은커녕 깡통계좌와 갚아야 할 빚만 남는다. 2000년대 초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빚을 낸 사람이 급증하자 개인 파산과 카드 대란(大亂)이 왔다. 세출이 세입을 훨씬 웃도는 적자재정 구조가 굳어지면 나랏빚이 늘어나고 부모세대를 잘못 둔 미래세대의 주름살이 커진다.

미국 등 선진국 재정악화가 초래한 이번 세계 금융 불안은 씀씀이만 키우고 빚을 쌓아가다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발생했다. 민주주의는 장점이 많지만 경제적으로는 때로 치명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고민을 남겼다. 걸핏하면 나랏돈을 통한 공짜 복지 확대를 들먹이는 우리 정치인들이 글로벌 채무 쇼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원 수석연구원은 지금 추세라면 한국도 지난해 33.5%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50년 130%로 치솟아 재정위기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복지 및 공기업 부채 확대, 통일 변수까지 감안하면 재정이 위험수역(水域)에 들어가는 시점은 훨씬 빨라진다.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 학자가 “고도 경제성장을 거쳐 민주화를 이룬 뒤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든 점에서 한국과 그리스가 비슷하다”며 그리스를 따라가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가슴에 와 닿는다.

정부라도 중심 잡고 재정 건전성 지켜야

정치를 경멸하는 국민은 그런 수준의 정치인밖에 가질 수 없다지만 상당수 정치꾼을 보면 환멸에 가까운 불신만 깊어진다. 금배지와 자리 욕심만 느껴질 뿐 공동체의 앞날을 진지하게 고심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경제장관까지 지낸 일부 의원이 여의도에 입성한 뒤 내뱉는 ‘진짜 같은 가짜’의 재정 및 경제 궤변을 듣다 보면 그들이 공직자 시절 역설했던 정답을 녹음해 다시 들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이 아직 상대적으로 건전한 재정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사명감과 국가의식이 뚜렷한 역대 예산관료들의 공(功)이 적지 않다. 공무원도 때로 문제가 있지만 정치인보다는 객관적 장기적 관점에서 나라곳간 문제를 고민한다고 믿는다. 정치권의 자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정부라도 재정의 파수꾼으로서 책무를 다해주길 소망한다. 세계 곳곳에서 ‘빚의 복수’가 뚜렷해진 지금, 이 문제에 관한 한 국민 여론도 정부의 항전(抗戰) 의지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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