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국민 우롱한 盧정권 ‘좌파 부패’

  • 입력 2009년 4월 9일 20시 00분


“네 형은 동경(東京) 가서 사회주의 한다지?” 1937년 발표된 채만식의 희곡 ‘제향날’에 나오는 이 대사는 1920, 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을 거둔 이후에 사회주의 바람이 전 세계에 불면서 한국 지식인 사이에도 1930년을 전후해 확산됐다. 서구의 새로운 사상이 직수입되던 일본에 가있던 한국 유학생들이 사회주의에 많이 매료됐다.

진보 지식인의 본능과 한계

당시 조선에선 요즘 미국 유학을 가듯이 일본 유학 붐이 일었으나 그들은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최고학부를 나와도 권력 있는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일제는 조선인에게 고위직을 주지 않았다. 권력을 꿈꿀 수 없도록 거세된 식민지 젊은이들은 사회주의에 더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조선인들이 고등교육을 받으려면 유복한 계층이어야 했다. 이들의 사회주의 운동은 좀 심하게 말하면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 동정하는 격이었다. 태생적으로 현실과 유리된 이념의 울타리 속에 갇히고, 사회 변혁보다는 내부적인 주도권 다툼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였다.

1928년 ‘신흥과학’이라는 책에 실린 글은 이들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학생층은 경제적 생활에 있어서 하등의 궁핍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 기본계급이 되지 못하며 토지 소유자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노동계급의 유일한 동맹자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자산계급에 합류하여 반(反)혁명 진영으로 탈락하고 말 필연성을 갖고 있다.’

한국의 좌파 운동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5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탄생한 386 세대도 이들과 많이 닮아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식인이고, 좌파적 성향을 공유하고 있으며, 다른 집단과 세대에 대한 우월감이 강한 점도 일치한다. 386이란 이름이 대학 출신과 나머지를 구분하는 의미를 갖고 있는 점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국내외 당면과제를 풀어나가는 386 정치인의 현실 감각, 실전 능력은 낙제 점수인 것으로 지난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확인됐다. 1980년대 대학에 갈 수 있었던 ‘혜택 받은 계층’으로서 민중의 실질적 삶을 피부로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들 진영에서 NL(민족해방)파 PD(민중민주)파 등으로 패가 갈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이념 논쟁은 난해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386세대가 정권 창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노 전 대통령 측근의 부패는 이들의 마지막 치부까지 들추어낸다. 진보라는 간판으로 유권자를 유혹했으나 그것은 권력을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보수도 권력을 탐하는 것은 똑같지만 진보에 대해서는 유독 깨끗하고 도덕적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런 기대를 갖고 정권을 맡겨보니 진보 역시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부패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좌파라는 이념의 포장을 벗기고 보니 그 속엔 보수와 같은, 어쩌면 더 강한 권력 욕심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제2의 노사모(노무현에게 사기당한 사람들의 모임)가 생길 거라는 비아냥 소리가 나온다.

도덕성의 左右이분법 버릴 때

부패와 비리는 개인의 문제이고 어떻게 감시하고 막아내느냐가 중요할 뿐 좌우의 이분법으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비싼 값을 치르며 배우고 있다. 특정 집단이 깨끗하다는 선입견을 휴지통에 버릴 때가 됐다. 유권자에게 권력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 가운데 누가 진정으로 국민의 삶을 지켜줄 수 있는지 차갑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환영이 무너지면서 다른 나라들이 벌써 깨쳤던 정치인과 권력의 냉엄한 본질을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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