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원로에 목마른 사회

  • 입력 2009년 2월 26일 20시 24분


이탈리아가 여러 도시국가로 나누어져 있던 시절 베네치아공화국은 유럽 전역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강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였다. 인구가 가장 많았을 때 17만 명에 불과했던 이 작은 나라는 훨씬 몸집이 큰 국가와의 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세계 역사에서 100년을 넘기지 못하는 나라가 숱한데도 그들의 번영은 1000년 이상 지속됐으니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위기 속에 절실한 냉철한 지혜

베네치아는 우리와 흡사한 면이 많다. ‘물의 도시’라는 별칭 그대로 조그만 섬 위에 세워져 사람이 유일한 자산이었고 해외 교역을 통해 부를 이뤄냈다. 베네치아 지도자들은 남보다 불리한 여건에서 한 번의 실수는 국가 존망과 연결된다는 위기감을 지녔던 것 같다. 그들은 인간 욕망에 흔들리기 쉬운 시민과 국회를 크게 믿지 않았다. 그 대신에 원로 인사를 국가원수로 내세우고 ‘10인 위원회’라는 의사결정 기구를 만들어 나라를 운영했다.

10인 위원회도 원로원 출신들로 구성됐으니 국가의 고비마다 중대 결정을 원로들에게 맡긴 것과 다름없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와 판단력을 높이 산 반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을 경계했다. 원로가 주도하는 차가운 정치 체제가 베네치아의 장수(長壽)를 이끌어낸 것으로 역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로의 역할이 컸던 나라에서 빼놓을 수 없다. 1880년대 조선을 다녀간 미국인 조지 길모어는 ‘조선 사회에서 백발은 영광의 표시이며 대머리는 지혜의 상징이다. 할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노인에 대한 젊은이의 예의는 서양인들도 배워야 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서양인도 부러워했던 원로의 권위는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다. 농경사회에서 원로의 비중은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농업의 노하우 면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노인의 설 자리는 위축됐다. 그러나 세상이 급변하는 것 같아도 인간 사회에는 변하지 않는 게 더 많다. 이번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행사 때 감동을 준 추모 인파는 우리로 하여금 원로의 가치에 다시 눈뜨게 했다.

명동성당 앞에서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인내심을 갖고 추모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서로 밀치며 타고 내리는 무질서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들이 같은 시민들인지 혼란스러웠다. 한 사람의 진정한 원로가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원로를 본받게 만드는 위대한 힘이었다. 존경받는 삶은 그 자체만으로 모두에게 품격과 향기를 선사한다. 우리 사회에 김 추기경 같은 원로가 많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요즘처럼 저마다 자기 잇속을 챙기며 사분오열되어 있는 가운데 위기까지 닥쳤을 때 원로의 공백은 더 뼈아프다. 우리에게도 원로 집단이 있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의 목소리는 큰 울림을 얻지 못한다. 믿음이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혼돈 속에서 기댈 수 있는 원로의 판단력, 리더십을 우리 사회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수환 신드롬’은 진정한 원로를 갈구하는 목마름의 표현이었다.

‘진정한 원로’의 재건과 경청을

얼마 전 만난 70대 인사는 “나이 70이 넘고 나서부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래서 내 바람은 아들과 손자들이 잘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노인들에게 사리사욕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노인의 허심탄회한 충고에 사회가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분의 진심을 믿는다.

무너진 원로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의 도덕적 기반, 사회적 공헌의식을 쌓아 나가야 장기적으로 재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회복에 나서야 한다. 지나치게 소외된 노인 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들어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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