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탐욕과 손잡기 쉬운 비례대표제

  • 입력 2008년 4월 22일 02시 52분


대표(당선자)의 결정방식은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가장 간명한 제도는 제1 득표자를 당선자로 결정하는 상대적 다수대표제다. 미국 영국 우리나라의 선거제도가 이에 해당된다. 이 제도는 많은 유효투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제18대 총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겨우 27.7%의 득표로 당선됐다. 프랑스에서 채택하고 있는 절대적 다수대표제(결선투표제)는 유효투표의 절대과반수를 득표해야 당선되는데 선거를 두 번 실시해야 한다. 다수대표제의 단점인 사표를 최소화하는 제도가 비례대표제다. 이상적 제도이지만 특정 정당이 의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하기가 어려워 정국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례대표제 도입은 엉뚱하게 출발했다. 상대적 다수대표제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 수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국안정을 이유로 제1당에 무조건 과반수를 배정하기도 했다. 유권자가 비례대표에 대한 투표를 하지 않는 제도는 위헌이라는 2001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정당투표제가 도입됐다.

비례대표 명부는 전적으로 정당에 의해 작성되는데 선거 때마다 분란이 그치지 않는다. 찬조금 명목의 ‘돈 공천’이 언제나 말썽이다. 정치자금이 쪼들리는 야당은 공천을 통해 선거자금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선거공영제가 확대되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국민의 세금에서 수백억 원의 보조금이 정당에 추가 배분되기 때문에 더는 돈 공천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정당 수뇌부의 탐욕이 화를 자초한다.

비례대표제는 직능대표의 배려, 지역 편중의 완화, 소수자와 약자의 의회 진출을 위해 필요하다. 여성의 의회 진출 확대를 위해 공직선거법에서는 ‘100분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되, 후보자 명부 순위의 홀수에는 여성을 추천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제47조 제3항). 그런데 같은 비례대표선거인데도 지방의원선거에서는 이를 위반하면 등록신청을 수리할 수 없고(제49조) 등록 후에도 등록을 무효로 하지만(제52조),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이 같은 제재조항이 없다. 이는 잘못된 입법이다. 하지만 제47조가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제재조항이 없다고 해도 창조한국당, 친박연대가 행한 남성 우위 배정은 위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간 비례대표제의 개선 방안으로 의석수를 지역구의 50%까지 확대하고 전국 단일선거구가 아닌 권역별 선거구제가 제시돼 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예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소수파와 약자의 의회 진출 기회를 담보하는 비례대표제의 장점은 살려야 한다.

이제 비례대표제뿐 아니라 지역구제도까지 포함해 후보자 추천 방식과 시기의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묘약이 없어 안타깝다. 헌법상 보장된 정당활동의 자유에 비춰 공천과정을 법적으로 강제하기는 어렵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지도자들의 성숙한 정치공학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공천은 가급적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래야만 후보등록 이전에 정치적 사회적 검증과정을 거칠 수 있다. 선거일을 불과 보름 앞두고 발표되는 공천 결과는 유권자의 알 권리에 중대한 제약을 가져온다. 공천을 지금처럼 외인부대에 의탁하고 정당수뇌부가 뒤쫓아 가서는 안 된다. 정당의 존립 이유와 직결되는 정당후보자의 검증과 추천은 정당수뇌부가 직접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도 분명해진다. 타협과 소통을 통한 정당 내부에서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만 정당정치의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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