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존경받는 대통령의 조건

  • 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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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용쟁(丁亥龍爭)이 끝나고 무자년(戊子年) 새 아침이다. 10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이명박 당선인은 역대 대통령처럼 직업정치인이나 공직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

당선인은 산업화시대에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출한 사람이다. 하지만 공직자로서의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평생 모시던 정주영 회장과의 정치적 결별에 이어 정치 1번지 종로구 국회의원직은 선거법 위반으로 도중하차하고 만다. 와신상담의 기회는 서울시장으로 이어진다. 개발연대의 상징인 복개된 청계천의 물줄기를 시민의 품속으로 되돌림으로써 이명박 신화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끝없이 이어진 BBK 의혹도 뛰어넘었다. 그가 살아온 인생 역정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들은 어쩌면 그만의 흠이 아니라 동시대인 모두가 함께한 것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당선인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가난한 어린 시절의 사모곡은 우리 시대의 감동 어린 자화상이다. 하지만 오늘의 당선인은 춥고 배고픈 시절의 그가 아니다. 재벌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지냈으니 그는 이미 대통령 당선 전에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부와 권력을 향유해 왔다. 가난에 찌든 가족사를 뛰어넘어 형제 국회의원에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재벌가와 혼맥을 이루고 있다.

이제 당선인에게 아쉬울 게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부와 권력을 뛰어넘어 어떻게 명예를 지키느냐에 있다. 60년 전 민주공화국의 깃발 아래 선출된 대통령 중에서 국민적 존경을 받는 인물이 여태껏 아무도 없지 않은가. 건국의 아버지, 산업화의 영도자, 민주화의 화신들, 그 누구도 퇴임 이후 더는 국민적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새 대통령은 남북 간 지역 간 계층 간에 찢어진 국민을 소통과 통합으로 이끌어 가는 한반도 선진화의 향도여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나 여의도 정치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의 대상이다. 경제 살리기,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일자리 더 늘고 월급 더 받는 게 능사가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하여 재벌기업 총수들에게 투자 촉진을 역설한다. 이왕 내친김에 한국노총 민주노총도 함께 찾아가 노사정 화합의 첫발을 내디딜 수는 없는지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흐트러진 민심을 보듬어 안는 넓고 따뜻한 가슴이 필요하다. 어른스러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만백성을 감읍하게 한다. 언제나 어버이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최초의 CEO 출신 대통령, 부자 대통령, 가장 화려한 경력의 대통령, 이 모든 것이 장점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실용정부라는 미사여구에 도취될 때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 어느 하나 국민이 바라지 않는 정부가 있겠는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결코 권위주의적 냄새가 진동하는 정권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아서 마이어 슐레진저가 폄훼한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t) 시대를 청산하자. 군왕 같은 위엄은 지키되 군림하지 않는 모리스 뒤베르제의 현대판 공화적 군주(monarchie r´epublicaine)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권력만 탐하는 정객(politicien)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역사에 빛나는 국가적 인물(homme d'Etat)로 길이 남아야 한다. 왜 우리는 링컨 케네디 드골 같은 남의 나라 대통령만 칭송하고 살아야 하나. 우리 국민도 이제 떠날 때 뒷모습이 아름다운 대통령을 기약해 보자.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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