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새로운 세계질서와 중심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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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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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종속이론이 유행했다. 남미를 중심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종속이론에 의하면 세계에는 몇 개의 특권층 국가가 존재하며 이들은 저개발 국가로부터 자원 노동 시장을 착취하여 치부를 꾀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우월성과 자유무역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선진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종속이론은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세계 각국을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고 주변부는 중심부의 착취 대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종속이론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개발시대의 자유시장 정책이 저개발 국가를 빈곤으로 몰아가는 것같이 보일 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1980년대 아시아에서 한국 등 신흥공업국(NICs)이 비약적인 경제적 발전과 산업화를 이루고 1980년대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사회주의 경제가 몰락하면서 종속이론도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났다.

냉전 이후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중국 등의 시장경제 채택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결론짓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을 통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파에 열을 올렸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자유주의 경제의 우월성을 전제로 경제 성장, 무역과 투자의 자율화,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완화, 금리와 환율의 현실화 등 경제의 자유화와 세계화를 촉진하고 독려하는 정책을 의미했다.

종속이론 퇴조시킨 한국의 발전

워싱턴 컨센서스는 1998년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터진 뒤 IMF가 구제 조건으로 재정의 억제, 금리와 환율의 현실화, 자본시장의 개방, 기업의 세계화를 강제함으로써 더욱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워싱턴 컨센서스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의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의 ‘반세계화 운동’을 야기했고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하는 무역 자유화, 세계무역기구(WTO)와 IMF 등 세계 경제 기구는 저항의 표적이 됐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항하여 대두된 것이 ‘베이징 컨센서스’이다. 경제 대국으로서의 중국의 급부상을 배경으로 제기됐는데 워싱턴 컨센서스에 ‘굴복’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 않으면서도 현저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개혁과 실험에 대한 의지(commitment)’, 국내총생산(GDP) 증가에만 매달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성장 정책, IMF 등 외부의 강요에 흔들리지 않는 자주적 결정을 강조한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워싱턴 컨센서스가 불신을 받고 중국의 세계적 역할이 증대하자 더 각광을 받았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평가절하된 것은 워싱턴 컨센서스뿐만 아니라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의 리더십 역할을 자임했던 G7(1998년 이후는 G8) 정상회담이다. G8은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해법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를 낳았다. G8의 허점을 보완하고 중국을 포함한 세계의 경제 실세를 포함하는 정상회담을 구성해야겠다는 인식에서 탄생한 기구가 G20이다.

G20은 여러 면에서 G8과 다르다. 무엇보다 구미 중심의 정상회담에서 벗어나 전 세계 지역의 주요 국가를 포함시켜 대표성과 정통성을 강화했다. G8이 아시아에서 일본 한 나라만을 포함했던 것에 반해 G20은 일본 외에 중국 인도네시아 한국 호주 등 5개 아시아 지역 국가를 포함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회원국도 10개국이나 된다. 지난 피츠버그 정상회담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제협의기구임을 공식 선언했다.

내년에 한국이 G20의 개최국이 되고 동시에 의장국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이 세계경제에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G20과 관련된 우리의 역할은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다. 세계경제의 ‘으뜸 포럼’으로서의 G20에서 어젠다와 참여범위에 있어 리더십과 주도권을 취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과 일본이 경쟁하고 견제하는 사이에서 한국이 동서양, 선진국-개발도상국, 강대국과 중진국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적 기회’ G20서 리더십을

그것이 도전인 이유는 G20 주최국이 되고 의장국이 됐다는 자만감에 도취된 나머지 중견국에 불과한 우리의 위치를 과대평가할 수 있어서다. G20은 전대미문의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 탄생했고 세계 경제문제를 다루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앞으로 세계의 일차적 통치 장치로서 경제문제뿐 아니라 정치, 안보(특히 환경 자원 인권 등의 인간안보) 문제까지 담당하게 되리라고 기대된다. 우리나라가 모처럼 주어진 역사적 기회에 ‘글로벌 코리아’에 걸맞게 우리의 국익뿐 아니라 지구촌의 번영, 안전, 정의와 관련된 범세계적 문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리더십을 행사하기를 바란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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