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초대석]정년퇴임하는 국내 부검의 1세대… 이정빈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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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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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수사 부실해 치과의사 모녀사건 못 밝힌게 가장 아쉬워”

31일 퇴임하는 법의학 전문가 이정빈 서울대 교수. 그는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DNA 분석으로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를 더는 추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31일 퇴임하는 법의학 전문가 이정빈 서울대 교수. 그는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DNA 분석으로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를 더는 추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정빈 서울대 의대 교수(법의학교실)의 이름은 1980, 90년대 격변기를 거친 국민의 기억 속에 각인돼 있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인 모를 죽음을 당한 시신을 부검한 뒤 카메라 앞에서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숱하게 봐 왔기 때문이다.

황적준 고려대 교수, 강신몽 가톨릭대 교수와 함께 국내에서 손꼽히는 부검전문가 1세대. 이런 그가 31일 정년퇴임한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속사정이나 사건의 진실을 이젠 털어놓고 떠나지 않을까. 2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30년간 부검현장에서 일하셨는데 가장 아쉬움이 남는 사건은….

“치과의사 모녀 피살사건입니다. 나중에 서류감정만 맡았는데 경찰이 시신이 있던 욕조 물 온도를 재지 않아 (증거가) 다 깨졌어요.”

‘한국판 OJ 심슨사건’이라 불리던 치과의사 모녀 피살사건의 핵심 쟁점은 피해자인 치과의사 모녀의 사망 시점이었는데 피고인은 외국 법의학자를 데려와 경찰 증거의 결함을 제시한 뒤 무죄로 풀려났다.

―외국 법의학자의 방어능력이 뛰어났습니까.

“그의 논리는 간단했어요. ‘욕조 온도가 없는데 사망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었죠. 이 사건은 누가 봐도 아귀가 다 맞습니다. 그런데 초동수사의 ABC가 없어서 증거력을 잃었던 것입니다.”

―요즘 경찰은 좀 바뀌었습니까.

“얼마 전 서울시내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숨진 지 이틀 지난 시신이고 체온이 31도라고 했어요. 그래서 사망 장소인 모텔방 온도를 빨리 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31.5도가 나온다는 거예요. 방안 온도가 그 정도면 시신 온도도 빨리 내려갈 수 없다는 걸 몰랐던 거지요. 관악경찰서 김모 경찰관 애인 살해사건 교훈을 벌써 잊어버렸어요.”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어휴’ 하며 한숨을 쉬었다. 1992년 김 경찰관 애인사건에서 경찰은 김 씨를 살인자로 몰았지만 나중에 진범이 붙잡혀 수사 결과가 뒤집혔다.

“여관방 온도를 재지 않아 그렇게 된 거죠. 시신은 11월 29일 오후 3시에 발견됐는데, 시신의 온도는 23도였어요. 여관방 온도가 29도 이상이었을 텐데 그걸 재지 않았어요. 더구나 시신 온도가 그 정도로 내려갔다면 누군가가 방문을 열어 놓았다고 봐야 하는데, 모두 무시했던 거죠.”

―1995년 인기 댄스그룹 멤버 김성재 씨 사망사건도 채증이 허술했습니까.

“보통 부검 재감정에 들어가면 해석은 달라질 수 있어요. 하지만 사실(fact)이 뒤바뀌지는 않습니다. 김 씨 사건에서 경찰이 수집한 사실은 형편없었습니다. 어떤 현상이 나오면 사실을 딱 떨어지게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사실을 소홀히 하고 감정적으로 기술했어요. 시신에 나타나는 시반은 ‘사실’의 문제인데 경찰은 ‘그렇다, 아니다’라고도 쓰지 않았어요. 시신을 찍은 즉석카메라 상태도 엉망이었죠. 게다가 시신을 제대로 찍지도 않고 옮겼습니다. (증거가) 날아가 버린 것이죠.”

―올 초 발생한 만삭 의사 아내 살해사건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까.

“이 사건은 초동수사 단계부터 아주 잘돼 있습니다. 이번에는 외국 법의학자가 들어와도 뒤집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 법의학은 최근 유전자(DNA)와 독극물 분석에서 정확도가 크게 올랐어요.”

―DNA 분석 수준이 향상됐다면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도 다시 추적할 수 있습니까.

“DNA 분석은 미국에서 1985년부터, 한국에서 1987년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중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1987년부터 미국 뉴욕법원이 DNA 분석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1987년부터 분석기법을 배웠는데 당시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가 유전자 복제까지 해봤죠. 1990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석법을 다시 배우고 들어와 한국에서 처음 사건 현장에 적용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 교수는 “내 기억이 정확하지요”라며 되묻기도 했으며 말수도 늘었다. 하지만 즉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영구 미제로 남아 있는 살인사건에 대해 다시 물어봤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DNA 분석은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한국에서도 DNA를 검사할 기술은 있었지만 일본 기술이 앞섰다고 여기고 시료를 일본으로 보냈어요. 이 사건 끝 무렵에 첫 번째 피해자인 할머니의 질 속에 있던 정액과 첫 번째 용의자의 인체조직을 보냈는데 일본에서 ‘두 유전자의 크기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두 번째 용의자도 ‘크기가 서로 다르다’고 했지요. 하지만 세 번째 용의자의 신체조직을 보냈을 때는 ‘여자 질 속에 있던 정액이 소멸됐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일본에서 분석한 자료가 있다면 지금도 새로운 용의자의 것과 대조할 수 없나요.

“유전자를 대조하려면 표준을 정해놓고 해야 하는데 일본은 마커(marker)를 놓고 검사하지 않았어요. 정액 DNA가 무슨 형(型)인지 일본이 알지 못했던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기술도 한국처럼 막 태동하던 상황이었어요. 당시에는 유전자 유형(type)을 정한다는 개념도 없었어요. 지금 나에게도 일본 자료와 영상이 있지만 아무 쓸모가 없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지금까지 성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나타날 때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의 유전자와 계속 대조한다고 했는데….

“국과수는 말로만 ‘하고 있다’고 그러지 실제 식별할 수는 없어요. 유전자 크기만으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지요. 1990년대 초반 국과수가 화성 용의자 유전자에 마커를 달려고 했지만 실패했어요. 답답해서 나도 나중에 일본에서 나온 자료를 보고 전기장치로 크기를 다시 분석해봤는데 같은 유전자도 전기를 연결할 때마다 크기가 다르게 나와요.”

―국과수에는 화성 살인사건 용의자의 정액이 냉동보관돼 있지 않나요.

“국과수가 유전자를 대조하느라 다 써버렸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DNA 분석을 통해서는 화성 살인사건 용의자를 더는 추적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화제를 바꿀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이후 각종 시국사건 부검을 맡으면서 국가기관으로부터 압력을 받진 않았나요.

“시국사건 사망자 중 제가 부검을 맡은 사건을 보면 이한열 씨 등 누가 봐도 사인이 분명했던 사건만이 제게 (의뢰가) 왔어요. 박종철 씨 등 분명하지 않았던 사건은 제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압력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는 얘기죠. 국가기관이 저를 ‘피켓걸’로 내세운 게 아닌가 합니다. 저에게 압력을 행사한 측은 오히려 일부 시민단체였어요. 김귀정 씨 사망사건은 분명한 사인이 있는데도 시민단체 회원들이 계란 세례 엄청 날렸어요.”

―개인도 “부검이 잘못됐다”며 항의하거나 협박한 적은….

“수지 김 살해사건의 범인 윤태식 씨로부터 2년간 편지를 받았어요. ‘당신 때문에 내가 감옥에서 잘살고 있다’는 내용이었지요. 홍콩에서 부검한 내용을 재검토한 것뿐인데 2년 동안 계속 편지를 보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을 검사한 적도 있습니까.

“1987년 대한항공 폭파 당시 독극물을 검사하다가 김현희 씨를 만날 뻔했지요. 그런데 김 씨가 독극물 앰풀을 뱉었기 때문에 나에게 오지 않았어요. 폭파 공범으로 앰풀을 들이켠 하치야 신이치(김승일의 일본 가명)의 시신 폐 조직은 확인했죠. 폐에서 시안화칼륨(청산칼륨)이 검출됐고 기도에선 부서진 앰풀의 유리조각이 나왔어요. 앰풀은 시안화칼륨 가스를 압축한 것인데 담배에 끼워 넣고 있다가 앰풀을 깨물어 호흡기로 들이켜면 즉사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민간단체에서 이산가족 찾기 행사를 할 때 11년간 친자 관계를 확인해준 적이 있습니다.”

―요즘도 범죄는 날고 있는데 법의학은 기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한국 법의학, 눈부시게 발전했어요. 부검기술 수준이 궤도에 오르긴 했지만 후배들에게 ‘범죄현장에 있는 것’을 잘 보라고 주문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시신은 진실에 대해 무언의 증언을 합니다. 지난해 중국동포 여성 사망사건에서는 시신이 부패해 사인을 밝히기 어려웠어요. 유심히 관찰하다가 얼굴의 부패 정도가 더 심한 것을 알았어요. 사망 전에 얼굴에 피가 쏠렸다는 증거지요. 용의자는 피해자가 과음으로 숨졌다고 우겼지만 사망 전에 목이 졸려 피가 쏠린 것을 입증했지요.”

―의사의 길을 가지 않고 법의학을 선택한 이유는….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일할 때 사망사건을 처리하면서 법의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지요. 제대 후 부친에게 말씀드렸더니 도전해 볼 만한 분야라고 하셔서 계속 이 길을 걷게 됐습니다.”

―퇴직하시면 무슨 일을 합니까.

“로펌에서 퇴임 후 오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런데 만삭 아내 살인사건 등에서 조금이라도 피의자를 위해 유리한 진술을 하면 돈은 벌겠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법의학의 명예를 지켜야지요. 퇴직하면 명예교수로서 법학전문대학원에서 3학점짜리 강의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이정빈 교수 약력::

△전남 장흥 출생(1946년)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1972년) △의학박사(병리학 전공)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주임교수 △대검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 △서울대 학생처장 △대한법의학회 회장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정회원 
▼이정빈 교수가 사인 규명에 참여한 주요 사건 일지▼

1981년 9월 여대생 박상은 씨 피살 사건. 용의자 모두 석방

1986년 9월∼1991년 4월 화성연쇄살인사건. 경기 화성시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차례로 살해되었으나 범인이 잡히지 않아 미해결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본부.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본부.
1987년 6월 이한열 씨 사망사건. 당시 연세대생 이 씨가 교내 시위 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

1987년 11월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서울로 향하던 항공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김현희 등 북한 공작원에 의해 공중 폭파

1992년 11월 관악경찰서 김모 경찰관 애인 살해 사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진범이 나타나 살인범으로 지목된 김 씨가 풀려남

1995년 6월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 치과 의사인 여성과 딸이 숨진 채 욕조에서 발견. 1심에서 남편인 의사가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2, 3심에서 무죄로 풀려남

듀스 멤버 김성재 씨.
듀스 멤버 김성재 씨.
1995년 11월 인기그룹 듀스 멤버 김성재 씨 사망 사건. 공연을 마친 김 씨가 서울 G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 살인범으로 지목된 여자친구는 1심에서 유죄를, 2, 3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음

2001년 10월 수지 김 사건 재수사. 1987년 윤태식 씨의 부인 수지 김 씨가 숨진 채 발견됐으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간첩 납치 사건으로 조작. 윤 씨가 진범으로 확인

2010년 5월 중국 동포여성 피살 사건. 피해자의 동거남 임모 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유죄가 선고

2011년 1월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 임신한 의사 부인 박모 씨가 숨진 채 욕조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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