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한국계 한식전도사 마자 씨-美 방영 13부작 다큐 ‘김치 크로니클’ 제작-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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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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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어머니 손맛’… 이젠 세계인 입맛으로 통할거예요”

다큐멘터리 ‘김치 크로니클’을 찍고 있는 마자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남편 장조르주 씨(오른쪽). 부부 사이에 영화 ‘엑스맨’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화배우 휴 잭맨이 서 있다. 사진 출처 www.foodandwine.com
다큐멘터리 ‘김치 크로니클’을 찍고 있는 마자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남편 장조르주 씨(오른쪽). 부부 사이에 영화 ‘엑스맨’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화배우 휴 잭맨이 서 있다. 사진 출처 www.foodandwine.com
“한식 세계화를 한다고 미국인 입맛에 맞게 음식 조리법이나 재료를 바꾸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한식이 가진 깊은 양념의 맛을 그대로 살려야 하는 거지요. 한식이 일식이나 인도 음식에 뒤질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인들이 한식에 접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한식의 인기는 점점 올라갈 겁니다.”

8일부터 미국에서는 공영방송인 PBS를 통해 한식과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13부작 다큐멘터리 ‘김치 크로니클’이 방영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프랑스와 아시아 요리를 결합해 세계 최고 요리사 반열에 오른 장조르주 봉주리슈탕 씨와 그의 한국계 혼혈 부인 마자 씨(35)가 제작하고 직접 출연했다. 한국 각지를 돌며 촬영해 김치뿐 아니라 안동 간고등어, 제주도 전복 등 지방의 유명 음식과 관광상품도 소개하는 내용이다.

10일 맨해튼 허드슨 강변에 위치한 ‘장조지-페리 스트리트’ 레스토랑에서 만난 마자 씨는 “일식이나 중국 음식, 인도 음식을 즐겨 먹는 미국인들이 한식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인들에게 한식이 얼마나 사랑할 만한 음식인지 보여주겠다”며 한식 세계화를 위한 전도사로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큐 ‘김치 크로니클’은 어떤 내용인가.

“남편과 함께 내가 한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한식 조리법을 배워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고 한국문화도 소개하는 내용이다. 제주도에서 토속음식을 배우기도 하고 춘천 막국수와 강릉 초당 순두부 등도 소개한다. 김치, 국수, 국과 찌개 등을 주제로 13부작으로 제작됐다.”

마자 씨의 남편 장조르주 씨는 프랑스 남부 알자스 출신으로 프랑스와 아시아 요리를 결합한 퓨전 요리로 세계 최고 요리사 반열에 오른 셰프(요리사)다. 그는 현재 미국 뉴욕과 라스베이거스, 중국 상하이, 프랑스 파리, 바하마 등 세계 곳곳에 14곳의 고급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에서만 ‘장조지’ ‘조조’ ‘페리 스트리트’ 등 8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게 됐나.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국계 다큐 프로듀서 에릭 리 씨가 2년 전쯤 남편의 식당에 찾아왔다. 에릭은 ‘김치 크로니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라며 우리에게 출연을 부탁했다. 그는 이미 내가 한식의 매력에 빠져 있는 걸 알고 있었다며 내가 적임자라고 말했다. 마침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뜻 깊은 일이 될 것 같아 선뜻 응했다.”

마자 씨는 입양아다.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보육원을 통해 버지니아 주의 미국 가정으로 입양됐다. 대부분의 입양아가 그렇듯 철이 들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19세 때 생모를 만나게 됐다. 그는 당시 ‘맘(mom·엄마)’이 직접 해준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식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서는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한식이 별로 없었다며 이 맛을 미국에 소개하고 싶어 김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외할머니와 두 이모, 사촌들이 살고 있는 속초에 가서 할머니가 지어주신 저녁을 먹을 때였다. 할머니는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해 우리를 위해 꽃게탕, 오징어 조림, 삼겹살 요리 등을 만들어 주셨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먹는 데 전념했다.”

―한식은 당신에게 음식 이상인 것 같다.

“한식은 엄마와 나, 그리고 한국과 나를 이어주는 끈이다. 엄마와 재회했을 때 집에서 만들어준 불고기와 된장찌개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맛이 낯설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먹던 음식 같았다.”

―영화 ‘X맨’에서 ‘울버린’으로 출연한 영화배우 휴 잭맨 씨 부부도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던데 어떤 인연인가.

“같은 건물에 살고 있다. (마자 씨 부부는 1층에 ‘페리 스트리트’ 식당이 있는 허드슨 강변 빌딩에 살고 있다.) 몇 년 전 잭맨 씨 부부가 이사를 왔는데 알고 보니 아들이 입양아였다. 내가 입양아라는 걸 알고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집에 초대해 한식을 대접하곤 했는데 매우 좋아하더라.”

―생모와는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었나.

“나를 입양한 아버지는 한국에서 근무하던 미 해병대 대령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입양할 때 나를 낳아준 생모에 대한 여러 자료를 모아 파일로 정리해뒀다. 맘의 사진이나 친척들의 이름, 전화번호 등이었다. 언젠가 내가 생모를 찾고 싶어 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나를 위해 모아둔 자료였다. 테네시 주 내슈빌에 있는 대학에 다니던 18세 때 생모를 찾겠다는 결심을 했고 워싱턴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무작정 전화를 했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홀트아동복지회를 소개해줬다. 이곳에 파일에 담긴 모든 자료를 건넸더니 3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자료에 있는 외삼촌의 전화번호가 다행히 바뀌지 않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맘은 다른 미국인과 재혼해 뉴욕에 살고 있었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3시간을 고민하다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흐느끼기만 했다. 19세 생일이 되기 3일 전 뉴욕으로 와 엄마를 처음 만났다. 공항 대합실에는 아시아계 사람이 많았지만 엄마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몇 개월 뒤 대학을 그만두고 뉴욕으로 왔다. 생모와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변호사인 어머니(입양한 어머니)는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법대에 진학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11세 때 ‘미스 틴 USA’에 선발돼 방송에도 출연했던 그는 어릴 적부터 ‘무대 체질’이었다. 그는 뉴욕에서 생모 곁에 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워갔다.

―한국 이름 ‘말자’에서 마자라는 이름을 따왔다는 소문이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언젠가 한국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내게 ‘이름이 한국 이름 말자와 비슷한데 혹시 원래 이름이 말자 아니었느냐. 아니라면 한국 이름을 하나 가져야 할 테니 말자가 어떻겠느냐’고 하더라. 나는 그냥 웃어 넘겼는데 그 기자가 그렇게 쓰지 않았나 싶다. 이후부터 한국에 여러 언론에서 내 원래 이름이 말자라고 나기 시작했다. 이 기회에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마자는 ‘말자’라는 이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마자라는 이름은….

“한국에 있을 때 나의 이름은 ‘브렌다 배’였다. 엄마가 배 씨였다. 한국 이름은 없었다. 마자는 나를 입양해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어머니 이름이 마고(Margo)고 아버지 이름이 제임스(James)다. 두 이름(Mar+Ja)을 합쳐 마자라는 이름을 주셨다.”

이날 ‘페리 스트리트’ 식당에서 만난 마자 씨의 외사촌 동생인 배주민 씨는 “마자가 말자라는 이름을 싫어한다”며 “기사에서 꼭 강조해달라”고 귀띔했다. 배 씨는 ‘페리 스트리트’ 주방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남편과도 음식을 인연으로 만난 것인가.

“맨해튼에 있는 남편 식당에서 일하던 친구 소개로 아르바이트로 취직한 게 인연이 됐다. 오디션 등 배우의 꿈을 키우려면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직장에 취직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장조지’ 레스토랑은 단골로 출입하는 영화배우 등 유명인이 많아 배우가 되려는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남편이 내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처음에는 틈을 주지 않았다. 나이 차가 20년이나 나지 않나. 그러다 우연히 저녁식사를 한 번 하게 됐는데 매력을 느꼈다. 몇 년간 사귀다 2000년에 딸 ‘클로이’를 낳았고 우리는 2004년 결혼했다.”

―한식이 미국인들의 입맛을 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미국인들이 일본 중국 인도 음식만큼 한식을 많이 먹지 않는 것은 한식을 접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접해보면 한국 음식이 얼마나 다양하고 맛이 깊은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가끔 미국인 친구들을 뉴욕 코리아타운에 있는 식당에 데려가 부대찌개, 설렁탕, 골뱅이무침 등을 사준다. 처음에는 잘 안 먹으려고 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먼저 가자고 한다.”

남편 장조르주 씨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장조르주 씨는 지난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소개된 태국 음식이 다양한 향신료를 설탕으로 대체해 실패한 반면 초밥이 미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전통을 지켰기 때문”이라며 한국 음식도 요리법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전통적인 한국음식을 미국인들에게 선보일 사업 계획을 짜고 있다. 직접 식당을 차릴지, 남편이 가진 음식 트럭 면허를 이용해 식당차를 운영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남편도 매디슨스퀘어가든의 푸드코트를 인수해 한식에서 영감을 얻은 음식을 서빙하는 식당을 차릴 계획이다. 현재 마무리 서류정리 절차를 밟고 있어 올해 안에 식당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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