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유인촌 문화부 장관

  • 입력 2009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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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가 손주와 마실가듯 공연 보는 세상 꿈꾸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3 개각에서 유임됐다. 지난해 2월 말 취임한 유 장관은 1990년 문화부 신설 이후 이어령 전 장관에 이어 두 번째 ‘장수’ 문화장관이 됐다. 문화장관은 큰일을 품은 정치인들에게는 ‘필수 코스’로 통한다. 문화의 아우라를 통해 표를 다질 수 있고, 정책도 진흥과 지원이 중심이어서 흠집 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이번에도 여러 의원들이 하마평에 올랐다. 하지만 유 장관의 입지는 탄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뢰 덕분일까.》

문화예술 통해 대한민국 품격 높일 터닝포인트
지자체-콘텐츠-주민 연계하는 컨설턴트 키워야

유 장관은 “그렇다기보다 표시는 안 나지만 대통령이 정책을 입안하는 바탕에는 늘 문화적 사고가 깔려 있다. 이번 2기에 들어 그것을 더 확실하게 구체화해보라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문화부 공무원들은 “장관의 엔도르핀이 어느 때보다 넘치고 의욕에 차 있다”고 말한다. 유 장관도 “이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한 문화정책이 곧 성과를 보일 것이고, 현 시점은 그것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품격을 도약시켜야 하는 터닝 포인트”라며 현장을 뛰고 있다. 22일 장관실에서 1시간 40분간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유 장관은 “할 일이 많다. 힘은 들지만 신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생각이 그렇게 문화적인가요? 경제대통령 이미지 때문에 실감하지 못합니다.

“20여 년간 곁에서 지켜본 건 다릅니다. 서울시장 때 ‘걷고 싶은 길’로 도로를 시민에게 돌려준 일, 청계천 복원 등 그 기조는 문화입니다. 제가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있을 때도, (이명박 시장은) 업무를 문화로 재해석해보라는 지시를 내려 서울시 국장과 의견을 많이 나눴습니다.”

―그 때문에 유 장관을 미리 서울시장 준비를 시킨다는 말도 나왔습니다만….

“허허, 그런가요. 하지만 대통령은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아닙니다. 늘 일이 중심입니다.”

―4대강 살리기도 토건 사업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 지적은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에 나옵니다. 4대강 살리기는 당장은 ‘공사’로 보입니다. 하지만 본질은 4대강 유역의 문화를 살리는 일입니다. 물건과 사람이 모이는 나루터 복원만 해도 새로운 문화가 형성됩니다. 그 효과가 이 정부가 끝난 뒤에 드러나겠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비난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유 장관은 도중 “안타깝다”는 말과 함께 물 컵을 여러 번 들었다. 경제는 심폐소생술처럼 충격요법을 쓰면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데 문화는 더디게 각인된다는 것이다. 유 장관은 “문화는 산업적 부가가치만 있는 게 아니다. 선비정신 등 우리 문화를 통해 생활을 바꾸고 세계와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부도 문화향유권 확대를 비롯해 친서민 정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리(里)’ 단위까지 촘촘하게 문화예술이 퍼지도록 할 겁니다. 문화시설만으로 부족합니다. 그곳을 드나드는 주민의 생각이 바뀌고 확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농사짓거나 물건 파는 방식, 사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문화부는 지자체 시설과 콘텐츠, 지역주민을 연계하는 방식을 조언해주는 문화컨설턴트를 육성할 계획입니다. 어촌의 빈집을 활용한 일본 니오시마의 이에(家) 프로젝트도 본받을 만한 사례입니다.”

유 장관도 2004년 강원 평창군 봉평면 폐교에 극장을 열었다. 그는 “그곳에서 오히려 내가 놀라운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연극 ‘리어왕’을 공연하는데 할머니가 손주의 손을 잡고 매일 오더니 4일쯤 되던 날, 객석에서 리어왕의 대사를 치기 시작했다는 일화다. 그는 “할머니가 손주 손잡고 ‘문화 마실’ 가듯 공연장에 오는 게 문화예술정책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수원 못골시장 같은 재래시장도 문화의 힘으로 확 달라졌습니다.

“문화부가 거기에 10억 원을 들였습니다. 돈은 적게 들이고 컨설턴트를 10여 명 보내 상인들이 꿈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재래시장은 백화점에 없는 사람 냄새가 나야 합니다. 흥정도 있고, 덤도 주고, 소리도 지르고. 다만 상품은 신선해야 합니다. 시장은 차 타고 오는 사람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일일 부엌이자 냉장고가 되어야 합니다.”

―미니홈피 메인 화면에 꿈을 주제로 한 돈키호테의 대사가 있던데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어떤 꿈을 꾸십니까.

“존경받는 배우가 꿈이었습니다. 배우는 고도의 훈련과 고뇌, 사색을 하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무대 위 발걸음 하나라도 관객의 호흡을 멈추게 할 수 있도록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배우가 꿈이었는데, 지금은 그 꿈을 뒷바라지하고 있습니다.”

―장관으로서 대한민국의 꿈은 어떻게 꾸세요.

“문화로 국민들이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나라입니다. 특히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화합해야 합니다. 남북 분단에서 오는 사고의 경직성도 넘어서야 하고. 그런 자유로운 마당을 문화부가 마련할 것입니다.”

―지난해 일부 기관장 교체 논란으로 그게 화합이냐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가도 그러시겠습니까.

“정치 쟁점이 됐지만 그건 이념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문제였습니다. 그것을 바꿔달라고 했는데 못하겠다고 하고 임기는 지키겠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요. 하지만 제가 재직 중 지난 정부처럼 편 가르기를 했다면 문화 현장이 조용할 리 있습니까? 총대를 멨다고 하지만 그런 정치적 공세는 헛손질이자 헛주먹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유 장관의 열의는 더욱 다가왔다. 한 시간쯤 뒤 유 장관은 윗옷을 벗었다. 주말 축구리그로 학교체육의 획기적 변화를 낳은 것을 비롯해 문화부의 정책 성과를 실무자처럼 자세하게 설명도 했다. 슬쩍 다시 물었다. “서울시장 출마설 또 나올 텐데요?” “에이! 그거 목표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장관직을 떠날지라도 바깥에서 이 정부의 문화정책을 뒷받침할 겁니다. 대통령이 문화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 문화컨설턴트를 누구보다 잘할 것입니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유인촌 장관:

―1951년 3월 20일 전북 완주 출생

―1980년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졸업

―1986년 중앙대 대학원 연극학 석사

―1974년 MBC 6기 공채탤런트

―1990년 한국방송연예인노동조합 위원장

―1999년 유시어터 대표

―2004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2007년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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