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대통령의 권위를 회복하라

  • 입력 2008년 7월 10일 03시 00분


수도의 중심이 반정부 촛불집회와 시위대에 사실상 점거된 지난 달포 동안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골똘하게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며 깊은 수심에 잠겼었다. 6·25전쟁 이후 이처럼 나라의 권위와 질서, 사회적 신뢰와 기강이 송두리째 흔들린 대혼란을 경험하기란 1960년 장면 민주당 정권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당시엔 비록 양쪽이 다 바람직스럽지는 못해도 좌우간에 비관적인 미래나마 전망해 볼 수 있었다. 볼셰비즘에 먹히든지 보나파르티즘에 먹히든지…. 북의 붉은색 소비에트 독재를 불러오든지, 남의 카키색 군부의 독재를 불러오든지…. 결국은 5·16 쿠데타로 최악의 소비에트 독재는 막게 됐다.

촛불집회로 지새운 2008년 여름엔 장면 정권 시절과도 달리 비관적 전망조차 해볼 수 없을 정도로 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1960년대와는 달리 스스로 임종을 기다리는 북의 체제가 남을 접수할 힘은 없다.

남의 군대 내에도 박정희 같은 리더십을 지닌 보나파르트가 있는지 알 수 없고, 있다고 해도 휴대전화로 외부와 수시로 연결하는 장병을 데리고 교통체증이 우심한 한강 다리를 넘어오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망이 가능한 유일한 미래는 한국의 남미(南美)화일까?(오, 천지신명이시여!)

난국 푸는 건 선출된 대통령 몫

어디로 뛰쳐나가려 해도 ‘미래’는 막혀 있다는 걸 머리통을 벽에 부딪쳐 보고 깨달은 다음 남는 길은 하나뿐이다. ‘현재’를 수리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현실적, 합리적인 길이다. 현재란 무엇인가. 지난 연말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뽑은 대통령이다.

촛불의 장기 집회가 온 국민에게 가르쳐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건 촛불집회는 나라에 요구는 해도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요구가 정당하면 정당할수록 그 요구를 수용 실천할 정부는 약화되지 않고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것은 가르치고 있다.

‘MB Out!’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이명박 물러나라!”고 외치는 어느 누구도 이 정권 퇴진이 실제상황이 되면 그 뒤를 감당할 아무 준비도 없고 준비할 생각조차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란 것을 참된 애국심에서 촛불을 든 양심적인 사람들은 차차 깨달았다. 시위를 선동한 ‘전위’만이 아니다. 시위의 막판에 ‘후위’로 따라나선 야당 정치인들도 촛불의 ‘미래’에 대해선 속수무책이었다. 도대체 의정단상에서 국사를 논하라고 뽑아준 ‘선량’들이 국회엔 등원도 않고 거리의 시위대 위세를 빌려 ‘개원 협상’이라는 흥정이나 하고 있는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힘들게 됐다. 국회에 국사를 맡길 수는 없다. 입법부의 권위는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행정부 이상으로 실추됐다.

1987년 민주화 투쟁 당시 경찰에 쫓긴 시위대가 명동성당에 피신하자 신군부의 강권통치하에서도 당국은 성당 진입을 자제하여 종교적 ‘성역’에 대한 권위를 지켜줬다. 그 성역의 사람들이 이번에는 대거 성역을 이탈해 세속의 정치집회에 가세했다. 게다가 그 집회의 힘을 빌려 어느 종교는 정부의 차별철폐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종교의 권위가 그래서 서는 것일까.

수리가 가능하고 또 서둘러 수리를 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다. 아무리 인기가 급락하고 그의 지지자조차도 무더기로 등을 돌려도 이 난국을 수습하고 국사를 책임질 사람은 대통령밖에 따로 없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내각책임제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행 대통령책임제 정부에서 대통령이 권위를 상실하면 나라의 모든 권위도 빛을 잃게 된다.

대실패 자인, 역전승을 노려라

대통령의 권위는 어떻게든 수리 회복돼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대통령 스스로 취임 후 지난 백일의 통치가 ‘대실패’였음을 자인하고 그 원인을 면밀히 사찰하고 그 대응책을 과감하게 실행해야 할 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취임 후 90일 만에 쿠바 침공작전의 패퇴로 인기가 폭락하는 비운을 겪었다. ‘대실패’는 그때를 회고하며 아서 슐레진저나 테드 소렌슨 같은 전기 작가가 붙인 표제다. 그러나 1961년 4월 쿠바의 대실패로부터 1962년 10월 흐루쇼프와의 대결의 ‘대승리’로 쿠바에서 케네디가 역전승하는 데엔 불과 1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통령의 권위는 수리 가능하며 그것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신속하게 가능하다는 걸 케네디 전기는 가르쳐 주고 있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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