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평화-안보 이중전략 필요하다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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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통합, 공존상생의 정치가 21세기 초의 공통된 구호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은 6·25전쟁 이후 50년 동안 지금처럼 공론권이 분열되고 공멸 상잔의 정치를 서슴지 않은 때도 없었던 것 같다. 한 기업인의 자살 배경에 대해서도 북에서 흘려보낸 음흉한 ‘타살론’에 철부지 네티즌만이 아니라 여야 정치권까지 시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정권의 햇볕정책이 남긴 가장 큰 부(負)의 유산인 남남갈등의 또 다른 국면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유럽 '아르멜 플랜'의 교훈▲

여야가 맞서고, 보수 진보가 다투고, 신구 세대가 갈라지는 것은 아무 잘못도 아니고 이상한 일도 아니다. 사회 정치 세력 사이에 좌익과 우익이 있다는 것은 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건전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새도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좌우의 날개가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햇볕정책을 집권 정부가 공식적 대북 정책으로 추진한 이후 한국 사회의 참으로 진기한 남남대립 양상은 현대 세계에서 가장 반동적인 북한의 세습 독재체제에 친화적인 세력이 ‘진보’를 자처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거론하는 세력이 ‘보수’로 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자유’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옹호론자와 ‘평화’를 지향하는 햇볕론자들이 서로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할 원수처럼 대립하고 있다. 과연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남남 화해도 이루지 못한 주제에 남북 화해를 기도한다는 것은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는 북에 빌미를 줄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우리가 우리 안에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좌도 우도, 평화론자도 자유론자도, 그러기 위해선 대북 화해정책도 대북 안보정책도… 그 모두가 다같이 공존 상생해야 할 우리 내부의 건전한 대립항(項)으로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례 없는 난제가 아니다. 이미 유럽에 성공 사례가 있다. ‘아르멜 플랜’이 그것이다. 1967년 당시 벨기에의 외무부 장관 피에르 아르멜의 이름으로 제출된 보고서(‘동맹의 미래’)가 바탕이 된 이 플랜은 그 뒤 독일 통일과 냉전체제의 해소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이른바 ‘이중(二重) 전략’의 원리가 되었다. 동맹국의 방위라는 NATO의 ‘고전적’ 역할 외에 동서의 긴장완화를 NATO의 대등한 제2 목표로 추구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데탕트’(긴장완화 정책)와 ‘디터런스’(전쟁억지 정책)를 연계한다는 뜻이다. 역사학자 미하엘 슈튀르머는 아르멜 플랜의 절정을 구가한 것이 곧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었다고 적고 있다.

서독에서 80년대 초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에도 동방정책이 그대로 계승된 것은 ‘평화’를 지향하는 긴장완화와 함께 ‘자유’를 수호하는 체제안보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소련 및 동유럽 제국과의 화해를 추진한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서독을 서방 군사동맹인 NATO의 일원으로 묶고 서유럽 통합을 추진한 콘라트 아데나워의 ‘서방정책’에 대립한 대안은 아니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아데나워의 서방정책과 함께 비로소 날개를 펼 수 있었던 것이다.

햇볕정책과 그것이 남긴 남남 갈등의 불행한 유산은 북한과 미국, 민족 문제와 동맹 문제, 평화추구와 자유수호를 마치 양립할 수 없는 대립항인 것처럼 만들었다는 점이다.

▲대북정책 '일방주의'론 안돼▲

그러한 일방주의의 가장 가시적인 사례가 국가안전기획의 최고 책임자가 대북 햇볕정책의 ‘사도’로 자처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방주의의 가장 희화적(戱畵的)인 사례가 지난해 6월 말 정부의 최고위층이 월드컵대회가 무사히 치러지고 있는 것도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자화자찬한 바로 그 다음날 서해교전이 발발했던 사건이다.

남북의 동족화해는 필요하고 한반도의 평화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한미동맹의 굳건한 바탕 위에 북의 핵 위협이나 불바다 위협을 물리칠 전쟁억지력을 확보하고 있을 때 비로소 현실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한반도의 탈냉전시대에 필요한 대북정책은 일방적인 햇볕정책이 아니라 아르멜 플랜과 같은 데탕트와 디터런스의 이중 전략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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