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태섭]‘지질 재해’ 대비 과학시추공 뚫자

  • 입력 2007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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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재해라는 용어가 생소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지진, 지진해일, 화산, 산사태, 지반침하, 단층운동, 기후 변동, 침식, 퇴적, 토양 오염을 포함해 인류에게 피해를 초래하는 지구 과정의 모든 현상이다.

한때 강대했던 해동성국 발해는 10세기 초 재개된 백두산의 화산 폭발 피해로 급격히 쇠퇴했고 926년 거란에 의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백두산 화산재의 연구에서 밝혀진 지질학적 증거가 이를 뒷받침한다. 14만30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던 1923년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사망자가 25만∼65만 명으로 추산되는 1976년의 중국 탕산(唐山)대지진은 일순간에 지구촌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지질재해는 현대과학으로도 막을 수 없거니와 무턱대고 막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던 곳에서 지진이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으면, 부근 어딘가에 그 응력이 차곡차곡 축적될 가능성이 많다. 언젠가는 그 응력이 한꺼번에 지진을 통해 나오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소규모의 지진이 자주 일어나 주는 편이 피해를 훨씬 줄여 주는 셈이 된다. 현대 과학은 지진, 화산 등의 지질재해에 대해 인류의 피해를 경감 혹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질재해에 대한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달 20일 발생한 규모 4.8의 오대산 지진은 어느 날 사회를 들썩이다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지질재해에 관한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인도양 일대에서 무려 28만3000여 명의 인명을 앗아 갔던 2004년의 수마트라 대지진에서 보듯 지질재해에 대한 무관심과 안전 불감증은 가장 무서운 적이다. 최소한의 지진해일 경보체계만 갖췄어도 대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국내 전문가들은 선진국처럼 관련 학계의 충분한 연구와 검증을 바탕으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지질재해 대책을 강구하는 데 중지를 모으고 있다. 지진 규모가 1이 증가할 때마다 지진에너지는 32배 정도 커지는데 과학적 근거 없이 지질재해의 가능성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면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켜 국가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반면에 예상되는 피해를 과소평가하면 수마트라 지진해일의 예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지질재해 연구는 지진학 암석학 지구화학 수리지질학 지구물리학 물리탐사학 해양지질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합적으로 이뤄진다. 또 국제적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지질재해의 요인과 거동의 특성을 좌우하는 기초연구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얻었다.

중국은 2005년에 지하 5.2km에서의 과학시추에 성공했다. 일본의 경우 열도 아래로 들어가는 태평양판까지 최대 10km 이상의 과학시추를 해양 8곳과 인근 일본 열도 5곳에서 착수할 예정이다. 과학시추란 구체적인 목적과 성취가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담보된 시추를 말한다.

한국의 경우 과학시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최근 경북 포항시 일원의 지열수 연구를 목적으로 수행한 지하 2.3km까지의 시추공 정도이다. 한반도의 심부지각 안정성 연구에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암석 시료조차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은 10만 km²의 좁은 면적에 4800만여 명이 산다. 지질재해 대비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국토 이용을 위해 지구과학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 경영전략의 핵심 사항이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지구의 해’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유일한 생명체의 터전이다. 정말로 소중하고 고귀한 지구지만 고마움을 망각하는 필자부터 자성하면서 지질재해에 대한 연구에 소홀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이태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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