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덕림]노고지리는 어디로 갔나

입력 2006-05-08 03:01수정 2009-10-0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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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남구만의 시조에서)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 (이재의 시조에서)

예로부터 시가(詩歌)의 소재로 사랑받은 종달새.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표제어는 종다리이지만 노고지리란 예스러운 이름이 더 정답다. 그 외에도 고천자(告天子), 운작(雲雀) 등의 운치 있는 별호로 불리었다.

노고지리는 전원생활의 평화스러움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부지런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농경사회의 첫째 덕목이 근면인 만큼 우리 선조들은 모두 ‘종달새족’으로 종달새를 좋아했음에 틀림없다.

‘지리 지리 지리리’ (정지용의 시 ‘종달새’에서)

‘비일 비일 종종종’ (이원수의 시 ‘종달새’에서)

노고지리의 지저귐은 듣는 이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정도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짝을 찾는 연가(戀歌)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좀 생뚱맞다. 텃세권을 지키기 위한 수컷의 으름장이란다.

노고지리는 비행 솜씨 또한 출중하다. 수직 비상과 수직 하강을 자유자재로 한다. 하늘 높이 떠 있다 땅으로 내려올 땐 쏜살같이 민첩하다. 그리고 일부러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앉는다. 천적들을 따돌리기 위한 ‘속임 동작(페인트 모션)’이다. 그리곤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재빨리 종종걸음으로 집을 찾아간다. 우연히 눈에 띄기 전에는 노고지리의 둥지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음도 그 때문이다.

곡우(穀雨) 아래 녘, 노고지리가 보고 싶어 고향 마을을 찾았다. 옛 어른들 얘기로 청명 즈음에 오동나무 꽃이 피고 노고지리가 나타난다고 했으니 지금쯤 봄노래를 들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판 하늘 높이 가물가물 떠서 맑고 고운 노래를 들려주던 노고지리. 그러나 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며 찾아간 길은 헛걸음이 되고 말았다. 고향 친구들은 노고지리가 안 보인 지가 몇 해인지 모를 만큼 꽤 오래됐다고 말했다.

그 많던 노고지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노고지리는 백과사전에 쓰인 대로 ‘북위 30도 이북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널리 분포하며 전국의 강가 벌판, 경작지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인데 말이다.

어릴 적 노고지리의 노래를 들으며 뛰놀던 들판으로 나가 보고서야 노고지리들이 왜 사라졌는지 알 만했다. 개울도, 들판도 옛 모습이 아니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벌판을 가로질러 북한강 상류로 흘러들던 앞개울은 힘센 불도저에 의해 물길이 달라져 있었다. ‘뼝대’와 다북쑥, ‘갈다리’ 등이 어울려 자라는 속에 노고지리들이 둥지를 틀던 들판은 귀화식물 돼지풀의 세상으로 변했다. 또 여기저기 흩날리는 비닐 나부랭이들은 싱그러워야 할 봄의 들녘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어야 건강할 터인데 부질없는 인간의 손길이 자연에 깊은 병을 안겨 주었음에 낙담했다.

산천이 의구(依舊)하지 않거늘 어찌 노고지리가 그대로 있어 주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이제 어디로 가야 노고지리를 만날 수 있을까? 노고지리 노랫소리가 끊긴 들판엔 ‘침묵의 봄’만 머물다 갈 뿐이었다.

그 뒤 들은 소식으로는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종다릿과 4종 중 특히 뿔종다리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 환경부가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이덕림 ‘춘천학공부모임’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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