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장영란]산골 여성들의 소박한 삶

입력 2006-07-03 03:00수정 2009-10-0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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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귀농운동본부가 여는 귀농학교에 다녀왔다. 여성 강사가 나 혼자라기에 주제를 ‘여성이 산골에서 사는 지혜’로 잡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이웃 여성 몇 분을 만나러 다녔다. 남편과 함께 열심히 농사하는 이,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이, 그리고 혼자 사는 처녀…. 처녀가 귀농해 살아간다면 많은 이가 놀라워하신다. 일은 어떻게 하나? 무섭지는 않나?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우리 식구가 처음 귀농했을 때, 어떻게든 여기에 자리 잡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일했다. 눈 뜨면 농사일을 했고 틈틈이 집까지 지었다. 시간이 흘러 십 년.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일을 무리하게 해서인지 허리병이 도졌다. 쭈그리고 앉아 호미질하는 자세가 허리뼈를 일찍 퇴화시킨단다. 의사 말이 우리나라 농촌 여성에게만 있는 병이라고 한다. 정말 마을 할머니 대부분이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일은 많고 몸은 안 따라 주니 남편에게 기대게 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 주었으면…. 그럼 남편이 없으면 여기서 살 수 있을까? 남편이 있건 없건 내 힘으로 산골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싶다.

처녀들은 혼자 몸이라 그런지 소박하게 살아간다. 자기 힘이 적다는 걸 알기에 농사일을 크게 벌이지 않는다. 빈집 빌려 살고, 묵은 논밭 빌려 먹을거리를 심어 먹으니 큰돈 들 일이 없다.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라 틈틈이 생활비를 번다. 인구조사원, 면사무소 도우미, 한글교실 강사…. 그러다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는 분도 있다.

그렇게 사는 한 분의 집을 찾아갔다. 그이는 오막살이를 고쳐 산다.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자그마한 마당. 나지막한 마루에 걸터앉으니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밭을 돌아보는데 고추 조금, 마늘 조금, 오이 몇 포기 기르는 모습이 정겹다.

“일 많이 못 해요. 안 하던 일이라 그렇게 하면 몸이 힘들어요.”

자기 손으로 이것저것 길러 보고, 틈틈이 남의 일도 도우며 농사일을 배운단다. 요즘은 퇴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며 마당에도, 밭에도 퇴비를 쌓아 두었다. 농사가 작지만 고추 한 포기, 오이 넝쿨 하나 기르는 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소박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이 밭 저 밭에 할 일이 쌓여 있다. 농사일은 모두 몸으로 해야 한다. 뭐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없지만 몸 만드는 일이야말로 그렇다. 시골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몸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 내 몸 생각은 안 하고 일 욕심만 부린 것 같다. 소박한 삶에서 오는 몸과 마음의 평화.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자연으로 돌아와 살면서 우러나오면 얼마나 좋으랴.

귀농학교에 가니 여성이 여러 분 계셨다. 남편이 시골로 가서 살자고 해서 따라 오신 분, 직장 생활을 하는 처녀, 도시 생활에 지쳐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이, 머리보다 몸을 움직여 살고픈 이. 이분들이 시골 생활에서 바라는 꿈은 다 다르리라. 그 꿈을 이루시길 빈다. 그리고 좀 더 싱싱한 몸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장영란 농부·자연칼럼니스트

◇전북 무주군의 산골에서 농사짓고 글 쓰며 살고 있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을 썼고 자연에서 두 아이를 기른 이야기

를 묶어 ‘아이들은 자연이다’(돌베개)를 새로 냈다. ‘자연달력’ 홈페이지(nat-cal.net)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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