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진우]익숙한 서울 정겨운 시골

  • 입력 2006년 1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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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6일)은 몹시 추웠습니다. 서울에서 거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조금만 참으면 추위가 가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가족과 따뜻한 남쪽 바다를 떠올리며 감기 몸살에 걸려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추슬렀습니다. 서울과 거제도를 오가며 생활한 지 벌써 넉 달이 지났습니다. 조그맣게 출판사를 시작했지요. 출판사 기획실장 노릇을 한 적은 있었지만 모든 일을 책임지고 해 보기는 처음이라 용썼던지 책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감기 몸살에 걸렸습니다. 이것도 ‘산후통’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나 막상 집에 도착해 보니 서울보다 더 춥고 바람마저 매서웠습니다. 이미 마을은 잠들어 적막강산인데 오롯이 불 켜진 이 사람의 집 창문은 따뜻해 보였습니다. 차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달려 나오는 아이들과 수줍게 뒤따라 나오는 아내를 보면서 두 다리의 힘마저 쑥 빠져 버렸습니다.

아이들과 얼굴을 비비는 동안 아내는 짐을 날랐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투정을 부렸습니다. “여기가 서울보다 더 춥네.” 서울 토박이인 아내가 보란 듯이 크게 웃었습니다. “여기가 더 춥다고 해도 안 믿더니….”

사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만 아니면 거제도의 겨울이 서울의 겨울보다 훨씬 덜 춥습니다. 서울에서 전화를 걸어 안 추우냐고 물으면 내복도 안 입고 다닌다고 자랑하던 사람이 아내였으니까요.

그러나 실제 기온과 사람이 느끼는 온기는 다른 모양입니다. 10년 가까이 거제도에서 살았지만 아내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거제도가 더 추운 곳이니 말이죠. 남쪽 바다가 따뜻한 이 사람이나 서울이 따뜻한 아내. 서로 따뜻한 곳이 다르다고 따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 사람은 11세에 고향인 경남 통영을 떠나 서울과 거제도를 떠돌며 살아왔습니다. 거제도에서 통영이 지척인데도 여유가 없어 통영에 살러 가지를 못했습니다. 올봄이나 여름쯤이면 통영으로 옮겨 가 부모와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통영은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시내는 북적거리지만 살게 될 인평동 집은 바로 산 아래 있고 집 주위에 밭이 펼쳐져 있어 시골 마을과 다름이 없습니다. 도시에 익숙한 아내와 고향에 살고 싶은 이 사람의 마음이 이제야 어울리게 된 듯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시골에 살 때보다 생활비가 많이 들 것이고 글 쓰는 일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고민하던 차에 형의 투자를 받아 출판사를 차리게 된 것이지요. 고향에서 살기 위해 서울 가서 일을 하는 셈입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옛말이 있습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를 의미합니다. 서울에서 살던 25년은 시골을 몰랐고, 그 후 거제도 저구마을에서 살던 10여 년은 도시를 잊었습니다. 서울에서 살 때는 서울대로, 시골에서 살 때는 시골대로 행복도 있고 슬픔도 있었습니다.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사는 요즘, 도시와 시골이야말로 순망치한의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시와 시골이 서로를 한 몸처럼 여기기를 바랍니다.

이진우 시인·여러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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