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허영]국민참여 막는 ‘참여정부’

  • 입력 2004년 10월 10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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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치를 내걸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날이 갈수록 배타정치 내지 참여무시정치로 흐르고 있어 안타깝다.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정치 참여는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대의민주주의 나라에서는 우선 국회가 국민의 뜻을 헤아려 정책결정을 해야 한다. 물론 긴급하고 불가피한 공익을 위해서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결정을 할 때도 있다. 그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통상적인 경우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결정을 할 때 국민은 정치 참여를 통해 민의에 반하는 국회의 정책결정을 막을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행사의 유일한 수단이 의사표현의 자유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 참여를 하기 위한 중요한 투입의 수단이다. 따라서 의사표현의 자유는 민주정치에는 ‘생명의 공기’다. 단순한 기본권을 넘어, 정치를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이 바로 언론매체를 다른 상품처럼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가기밀 내세워 ‘알권리’봉쇄▼

그런데 국민이 의사표현을 통해 정책결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국정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지금 진행되는 국정감사는 입법부의 행정견제 수단인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중요한 절차요 과정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이 주어지는 이유도 국민이 알아야 할 사항을 빠짐없이 밝혀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참여정부’가 일부 정책문제에 대해 국가기밀 논란을 벌이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민감한 국정사항이라고 모두 기밀로 묻어둔다면 알지 못하는 국민이 어떻게 정치 참여를 하라는 말인가. 알 권리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우리 헌법재판소도 1992년 이래 군사기밀이나 국가기밀의 범위는 최소한도로 좁혀서 이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북한 남침 내지 붕괴시의 대비책 등은 국민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일이다. 야당의 당연한 견제적 국정감사 기능을 무력화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봉쇄하려는 정부 여당의 국가기밀 시비는 법리적으로 전혀 설득력이 없다. 가능하면 모든 국정사항을 있는 대로 투명하게 공개해서 국민에게 알려 국민이 눈을 뜬 채 주권자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참여정치의 모습이다. 참여정치가 단순히 일부 우군 시민단체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한 위장간판이 아니라면 다수 국민의 정치 참여와 투입 기능을 보다 강화하는 것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과거사 규명, 언론관계법 문제 등에 대한 다수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겸허하게 정책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진정한 참여정치다. 정부 여당이 강행하려는 이런 정책들은 다수 국민의 뜻을 어기면서 밀어붙여야만 하는 이른바 ‘사항강제’ 정책은 아니다. 지금 당장 처리하지 않고 내일로 미뤄지면 이미 늦어지는 화급한 정책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가장 시급한 일은 국민을 먹고 살게 하는 경제회생 정책이다. 그런데 급하지도 않은 일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려고 국감에서조차 야당과 싸우는 것은 참으로 꼴불견이다. 그런 정치 행태는 국가 권력의 행사는 언제나 국민의 정치적 합의 내지 공감대에 바탕을 두라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고 타협과 절충을 전제로 하는 다수결 원리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다.

▼수도이전등 반대목소리 경청을▼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결정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민의 정치 참여로 무산되었듯이 국회에서 다수결로 잘못 의결된 행정수도 이전 법안도 국민이 정치 참여를 통해 막으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전자에 대한 참여는 옳았고 후자에 대한 참여는 그르다는 논리는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가.

국보법 문제도 그렇다. 폐기 주장과 개정 주장이 대립하는 경우 개정의 폭과 내용을 두고 절충과 타협을 하는 것이 다수결의 기본정신이다. 하물며 대다수 국민이 폐지보다 개정을 주장한다면 ‘참여정부’가 가야 할 길은 너무나 자명하다. 정부 여당은 너무 늦기 전에 숨을 고르고 자유민주정치의 본질과 ‘참여정부’의 자화상을 살펴보기 바란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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