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정옥자/‘가정의 달’만으로 충분할까

  • 입력 2004년 5월 9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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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온갖 기념일로 가득 차 있는 달이다. 1일은 근로자의 날이자 아버지의 날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17일 성년의 날, 18일 5·18민주화운동기념일, 19일 발명의 날, 21일 부부의 날, 25일 방재의 날, 26일 석가탄신일, 31일 바다의 날까지 무려 열 개가 넘는다. 그 많은 기념일 중 아버지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다섯 날이 가정과 관련이 있으므로 단연 가정의 달이라 할 만하다.

▼전통적 가정윤리 심각한 위기▼

전통시대의 가족관계는 삼강오륜(三綱五倫) 속에서 규정되고 상호행위는 예(禮)로 규정되었지만, 그 틀을 깨고 현대화된 사회에서 가족구성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기념일의 남발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어버이의 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아버지의 날이 생긴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싶다. 최근엔 부부의 날까지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과 관련이 있겠다.

이렇게 가정의 구성원을 강조하고 기리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 가정의 안정과 가족관계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모든 사물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 가정은 이 험한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지만 아울러 속박의 사슬로 작동할 수 있는 요소도 다분하다. 가정을 중요시하던 전통이 가족간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도 한 사람만의 희생과 일방적 봉사만을 강요하는 껍데기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관계는 권력관계도 소유관계도 아니다.

가정의 달 벽두에 일산의 젊은 부부가 세 어린 자식들을 단칸방 쓰레기 더미 속에 방치했다는 신문보도는 충격적이었다. 4세, 3세, 1세 되는 세 아이의 아버지는 24세이고 어머니는 22세라고 한다. 이 부부는 10대에 결혼해 가정을 꾸린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우유를 사가는 것을 목격한 이가 있고 아버지는 며칠 전에도 들렀다고 하며 아이들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3개월간 완전 방치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관리능력의 문제로 보인다.

조혼이 유행하던 시절에도 아들딸 잘 나아서 키웠다고 하지만 그때는 핵가족이 아니라 대가족이었다. 아이는 여러 가족의 품안을 돌며 자랐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고모나 삼촌도 아이 보는 일을 당연히 여겼다. 아이 없는 이웃집에까지 돌아다니며 귀여움을 받는 일도 흔했다. 아이의 양육은 공동체의 공동책임이었지 꼭 경제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핵가족화된 현대에 젊은 부부는 따로 사는 것을 선호한다. 둘이 살 때는 좋지만 아이가 생기면 사정은 달라진다. 맞벌이부부의 경우 따로 사는 친정 부모나 시부모의 손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천행이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능력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의 양육은 곧 경제력과 직결되어 있다.

또한 지금의 젊은 부모는 보호받고 자란 세대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하나 또는 둘만 낳아 ‘위해 키운’ 세대다. 의식주 등 기본적인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주변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고생을 밥 먹듯 한 전 세대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도기 보완할 사회장치 필요▼

이미 서구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유독 자식만은 과보호하며 자립형 인간으로 키우는 것을 마다하고 대학에까지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 이런 문제를 만들고 있다. 전통적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가족관계가 형성되는 과도기에 생겨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틈새를 메워주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사각지대에 방치된 삶들을 보듬는 복지정책도 더욱 정밀해져야 할 것 같다. 나아가 전통적인 유교적 가족윤리를 대체할 수 있는 수평적이고 상호 보완의 정신을 살린 가정윤리의 필요성을 가정의 달을 맞아 절감한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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