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정옥자/大同社會를 위하여

  • 입력 2004년 4월 11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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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온갖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계절이 왔다. 그 이유는 지구온난화니, 차량의 배기가스니 하여 과학적으로 설명되겠지만 인문학도인 필자는 엉뚱하게도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을 떠올린다. 전통시대엔 하늘, 즉 자연과 사람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은 상호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꽃들이 차례도 질서도 없이 한꺼번에 피는 것처럼 정치 현실도 백화제방이다. 기존의 정당 외에 온갖 정당이 새로 생겨나 경쟁이 치열하다. 그 불꽃 튀는 경쟁의 정점인 선거가 불과 사흘 후로 다가왔다. 지난 몇 달 동안 정치 이야기만 들으면 어지럼증이 생겨 정치 이야기는 아예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걸려 오는 전화도 선거운동이다 싶으면 무조건 끊어 버리고 아무도 찍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다양성 인정하는 평화 공동체 ▼

오늘의 정치는 지역 갈등을 거쳐 계층 갈등, 그리고 세대 갈등까지 부추기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오늘과 같은 정치적 격변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조선 전기 사화기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기묘사화도 크게 보면 세대 갈등이자 계층 갈등으로 볼 수도 있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는 대부분 30대의 신예로 중종반정의 공신들을 포함한 훈구파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들의 눈에 훈구파는 기득권만 잔뜩 움켜쥐고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성가신 존재였다. 훈구파의 시각에서 보면 사림파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들이자 남을 비판하는 일만 능사로 삼는 철부지들이었다.

그 끝은 1519년 기묘사화로 귀결됐다. 사림파는 연산군의 난정을 극복하기 위해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오른 중종이야말로 개혁의 기수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급진성과 과격성에 신물이 난 중종이 이들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이들은 대대적으로 숙청당하는 비운을 당했다.

기묘사화의 피해자인 사림파는 젊은 세대이고 이들을 숙청한 가해자인 훈구파는 늙은 세대이니 세대 갈등이라는 대입법이 가능하다. 또한 사림파는 지방의 중소 지주층 출신으로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꿈꾸는 개혁파였고 경제적 토대가 취약한 반면, 훈구파는 건국 이래 1세기가 경과하면서 권력은 물론이고 경제력까지 독점하고 기득권을 향유하는 귀족층이었으므로 계층 갈등의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기묘사림의 핵심인 조광조가 훈구 가문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개국공신 조온의 현손으로 혈연적으로는 훈구파에 속했지만 사림인 김굉필에게 배우고 사림의 맹장이 되었다. 또한 기묘사화의 핵심 인물들인 기묘팔현 중 안당이나 정광필 같은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20여년 연상으로 이미 60줄에 접어들고 있던 인물들이었다. 출신 성분과 나이만이 훈구파와 사림파를 분별하는 기준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목숨을 걸고 추구하려 했던 이상사회는 무엇일까? 그것은 유교적 이상사회인 대동사회다. 대동사회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는 말과 같이 구성원의 차별성은 인정하되 크게 볼 때 함께하는 사회를 말한다. 사람에겐 남녀노소의 차이뿐만 아니라 능력의 차이, 외모의 차이 등 차별성이 무수하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별성을 넘어 평화 공존하는 공동체로 가자는 것이다.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은 이미 요순시대에 실현된 적이 있었다는 믿음이 뒷받침되어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되 더불어 잘살아 보자는 것이다.

▼정치혐오 심해도 정당한 한 표를 ▼

상호 비방과 공격을 일삼는 현실 정치에서 각 정당이 꿈꾸는 이상사회가 과연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설사 정당들은 그런 걸 갖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현대적 대동사회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지역의 벽, 계층의 벽, 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정당한 한 표를 행사했으면 싶다.

아무리 정치혐오증이 심해도 결국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홀로 예외일 수 없다는 서늘한 자각 끝에 집에서 쉴 나이지만 투표장으로 가야겠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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